AI 시대, 개발자의 역할을 다시 생각하다.『바이브 코딩 너머 개발자 생존법』 역자 인터뷰
AI가 코드를 대신 짜주는 요즘, 개발자는 어떤 기준으로 살아남아야 할까요? 『바이브 코딩 너머 개발자 생존법』은 단순히 툴을 잘 쓰는 법을 넘어서, AI 시대 개발자가 어떤 생각과 태도를 가져야 할지 이야기하는 책입니다. “AI는 속도를, 인간은 방향을 책임진다"는 메시지를 중심으로, 앞으로의 개발 문화와 역할을 함께 고민하게 만들죠. 이번 인터뷰에서는 그 과정에서 번역가가 어떤 고민을 했는지 조금 더 솔직하게 나눠 봤습니다. Q. 책의 ‘옮긴이의 말’을 보면 원서 제목이 여러 번 바뀌었다고 하는데, 번역가로서 제목의 변화를 통해 책의 방향성이 어떻게 달라졌다고 느끼셨나요? 책 『바이브 코딩 너머 개발자 생존법』 옮긴이의 말 중에서 A. 『바이브 코딩 너머 개발자 생존법』은 타이밍이 중요하다고 판단해, 온라인 연재가 막 시작된 아주 이른 시점부터 번역을 시작했습니다. 덕분에 원고가 계속 업데이트되는 과정뿐 아니라, 원서 제목이 여러 차례 바뀌는 순간들도 그대로 지켜볼 수 있었는데요. 마침 ‘클로드 코드’가 등장해 개발자들 사이에서 큰 화제가 되던 시기와 맞물리면서, 책의 제목과 내용도 함께 방향을 틀기 시작했습니다. 초반에는 ‘AI 코딩 어시스턴트를 활용해 어떻게 생산성을 높일 것인가’를 중심으로, 다양한 AI 툴 기반의 프로그래밍 활용법을 소개하는 책에 가까웠습니다. 그러나 점차 ‘AI 시대에 개발자는 어떻게 프로그래밍해야 하는가’를 묻는 방향으로 무게중심이 옮겨 갔습니다. (그래서 미리 번역해 두었던 두 개의 챕터가 통째로 사라지는 아찔한 경험도 했습니다…) 이런 변화 속에서, 이 책이 말하려는 핵심 대상이 점점 ‘기술’에서 ‘사람(개발자)’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단순히 ‘AI 코딩 어시스턴트를 잘 사용하는 법’을 알려주는 사용 설명서를 넘어, ‘AI 시대 이후에도 개발자로 살아남기 위해 사고방식과 일하는 방식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가’를 다루는 책이 된 것이죠. Q. 원서 제목이 여러 번 바뀐 만큼, 한국어판 제목도 많은 고민과 토론 끝에 결정되었다고 들었는데요. 최종적으로 『바이브 코딩 너머 개발자 생존법』이 된 이유가 있을까요? A. 제가 직접 정한 제목은 아니지만, 편집팀에서 여러 후보를 두고 오랫동안 고민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바이브 코딩’만을 전면에 내세운 제목을 준비하고 계셨던 것 같아요. 일종의 ‘바이브 코딩 대표 도서’를 염두에 두셨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책 내용을 차근히 들여다보면, 이 책이 다루는 범위는 특정 툴이나 테크닉으로서의 바이브 코딩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그 너머에서 AI 시대에 개발자가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를 끊임없이 질문하거든요. 그런 지점을 반영해 원제처럼 ‘바이브 코딩 너머’라는 표현을 붙여 주신 것 같고, 저 역시 그 방향이 책의 성격과 잘 맞는다고 느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개발자는 사라지지 않는다, 진화한다’라는 부제가 특히 인상 깊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AI 시대를 걱정하시지만, 사실 우리 모두는 늘 배우고 연구하며 스스로를 업데이트해야 하는 위치에 서 있잖아요. 그 부제가 그런 우리에게 “쉽지는 않지만, 포기하지 말고 계속 진화해 나가자”라고 말해 주는 것 같아 더욱 마음에 들었습니다. Q. 번역 과정에서 특히 고민이 깊었던 단어나 개념이 있었나요? 또한 원서에서 vibe coding을 ‘의도 중심 프로그래밍’으로 설명하는데, 한국어 독자들이 이를 이해하기 좋은 비유가 있을까요? A. 제가 가장 고민했던 개념은 Programming with Intent, 한국어판에서 ‘의도 중심 프로그래밍’으로 번역된 표현입니다. 바이브 코딩을 제대로 구현하기 위한 핵심 전제 조건이기도 하죠. 초반에는 ‘목표’와 ‘의도’ 중 어떤 단어를 선택할지가 가장 큰 고민이었습니다. ‘목표 지향 프로그래밍’이라고 번역하면 이해하기 쉽지만, ‘목표’는 최종 결과물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반면 ‘의도’는 그 결과에 이르는 방향, 기준, 계획 등 더 넓은 맥락을 포함합니다. 그래서 “의도를 중심에 두고 프로그래밍한다”는 의미를 살리기 위해 ‘의도 중심 프로그래밍’으로 번역을 확정했습니다. 이 개념을 설명하기에 가장 적절한 비유는 ‘내비게이션’입니다. 목적지(목표)만 입력해도 길을 안내해 주지만, 그 상태로는 우리가 원하는 방식과 전혀 다른 경로가 나올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유료 도로 제외’, ‘주유소 경유’, ‘최단 거리’ 같은 옵션을 설정하면, 내비게이션은 그 조건(의도)에 따라 최적의 경로를 찾아 주죠. 즉, AI에게 “서울로 가줘(결과)”라고만 지시하고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맡기는 식으로는 원하는 품질이 나오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기준과 방향을 명확히 설정해 주어야, AI가 비로소 그 의도에 맞는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Q. 번역 과정에서 ChatGPT나 Cursor 같은 AI 도구를 활용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또 AI 번역이 빠르게 발전하는 지금, 이번 작업을 하며 ‘AI가 번역가를 대체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나요? A. 이번 책은 실습 코드의 비중이 크지 않아, AI를 코드 생성에 직접 활용하기보다는 변경된 UI나 신기능을 확인하는 데 주로 사용했습니다. 이전에 번역했던 『러닝 랭체인』에서는 커서를 적극 활용해 코드 버전 차이를 찾아내거나 아이디어를 정리하는 데 큰 도움을 받았지만, 이번 작업에서는 ‘용어 선택’과 ‘뉘앙스 조정’을 함께 고민하는 파트너에 더 가까웠습니다. 저는 현재 챗GPT, 클로드, 제미나이를 모두 유료로 구독하고 있는데요. 같은 질문을 던지면 세 모델이 각기 다른 뉘앙스의 답을 내놓는 점이 재미있습니다. 가끔은 제가 번역한 문장을 보고 “원문이 이런 구조 아니냐”고 역추론까지 하는데, 소름 돋을 정도로 정확해서 놀랄 때도 많습니다. 저작권 문제만 명확히 해결된다면, 정말 강력한 보조 도구가 될 것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하지만 'AI가 번역가를 대체할까?'라는 질문에는 회의적입니다. 번역은 단어와 단어의 1:1 교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국어로만 할 수 있는 말투나 표현법이 있는데 이걸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제가 우려하는 건 AI의 기술적 발전이 아니라, 사람들의 언어 습관이 AI를 닮아가는 현상입니다. 번역가는 독자에게 가장 자연스럽고 익숙한 표현을 찾아야 하는데, 요즘은 사람들이 AI 특유의 번역체나 문장 구조에 점점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핵심을 찔렀다' 같은 관용구가 대표적이죠. 지금은 밈처럼 지나가듯 언급하지만 모든 유행어가 그렇듯 이런 말투가 무의식 중에 표준으로 자리잡을 수도 있으니까요. 결국 AI 번역을 보고 아무 이상을 못 느낄지도 모르겠습니다. Q. 번역가로서 ‘바이브 코딩’을 어떤 개념으로 정의하고 싶으신가요? A. 속도 빠른 동료내가 바라는 것만 제대로 설명하면 ‘이거 아니야?!’하고 들고와주는 동료라고 생각합니다. Q. 이 책의 원서를 처음 읽었을 때 어떤 점이 인상 깊으셨나요? A. 처음 공개된 원고는 애디 오스마니가 블로그에 썼던 글을 다듬어 확장한 내용이었는데, AI가 잘하는 일과 못하는 일을 구분하며 AI 시대에 인간은 어떤 역할을 맡아야 하는가를 끈질기게 묻는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코드 조각이나 툴 이름 같은 기술적 요소보다, 그 사이에서 일하는 개발자의 사고방식과 태도를 훨씬 더 많이 다루고 있다는 점이 특히 흥미로웠고요. 또 “AI는 속도를, 인간은 방향을 책임진다”라는 메시지가 인상 깊었습니다. 이 문장은 AI를 과도하게 두려워하거나 만능 해결사로 착각하는 시선이 아니라, 효과적인 도구로 바라보는 균형 잡힌 관점을 보여줍니다. 빠르게 만들 수는 있지만, 결국 최종 책임은 인간에게 있다는 점을 정확히 짚어 주죠. 그래서 이 책이 단순히 최신 트렌드를 소개하는 책이라기보다, 앞으로 몇 년을 버티는 데 기준점이 되어 줄 사고의 프레임을 제시하는 책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Q. 위의 답변에서도 언급하셨지만, 저자인 애디 오스마니는 “AI는 속도를, 인간은 방향을 책임진다”는 문장을 특히 강조하는데, 이 메시지를 한국어로 표현할 때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무엇인가요? A. 저자가 바이브 코딩을 운전에 비유하고 있어서, 이 문장은 비교적 빠르게 번역이 떠올랐습니다. AI는 엑셀을 밟고, 사람은 핸들을 잡는다라는 구조가 워낙 단순하고 리듬감 있게 정리되어 있어, 그 느낌을 최대한 그대로 살리고 싶었어요. 책 전체를 관통하는 일종의 캐치프레이즈 같은 문장이기도 해서 번역의 톤을 잡는 데 중요한 기준이 되었습니다. 가장 고민이 컸던 부분은 ‘책임진다’라는 표현이었습니다. 초안에서는 ‘AI는 속도를 돕고, 인간은 방향을 맡는다’라는 식의 후보도 있었는데, ‘맡는다’라고 하면 너무 평온하고 안전한 느낌이 들더라고요. 물론 평화로운 건 좋지만, 결과물에 대한 책임이 보이지 않고 그냥 꽃길만 걷는 기분이더라고요. 당연히 잘못될 경우도 생각해야 하는데 말이에요. 결과물은 결국 개발자의 몫이기 때문에 조심해선 나쁠 게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 무게감과 긴장감까지 담을 수 있도록 ‘책임진다’라는 표현을 선택했습니다. Q. 개발자이자 번역가로서 AI와 함께 일하며 느낀 가장 유용한 점과 동시에 가장 위험하다고 느낀 점은 무엇이었나요? 그리고 이번 책을 번역하며 얻은 가장 큰 통찰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A. AI와 함께 일하면서 가장 유용하게 느낀 점은 내가 원하는 것을 더 명확하게 정의하도록 스스로 정리하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전에는 개발이든 번역이든 손을 움직여 보며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지만, AI에게 일을 맡기려면 처음부터 이 작업의 목적이 무엇인지, 어디까지를 AI에 위임할 것인지, 어떤 조건을 반드시 지켜야 하는지 말로 명확하게 설명해야 했습니다. 이 과정 자체가 저에게는 사고를 정밀하게 다듬는 훈련이 되었고, AI의 가장 큰 장점이자 도움이라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가장 위험하다고 느낀 점도 바로 그 지점에서 나옵니다. AI가 코드를 대신 작성해 주고, 번역문을 평가해 주다 보니 생각 자체를 AI에 외주 주는 습관이 생길 수 있다는 겁니다. 결국 AI에게 어떤 작업을 맡길지 판단하고, 그 결과물에 책임지는 사람은 인간인데, 검토도 없이 무조건 맡기고 그대로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사고 능력이 무뎌질 수 있습니다. 이번 책을 번역하며 얻은 가장 큰 통찰도 그와 같은데요. “내 생각을 AI에 외주 주지 말자”입니다. AI는 훌륭한 도구지만, 사고와 책임은 여전히 인간의 몫입니다. 결국 나 자신이 고민하고 판단하지 않으면, AI가 아무리 뛰어나도 그 결과는 의미가 없다고 느꼈습니다. Q. 역자님이 생각하는 “AI 시대의 한국 개발자 생존법”은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무엇일까요?A. 한 문장으로 말하자면 조금 뻔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기본을 탄탄히 지키자”라고 답하고 싶습니다. 언어와 프레임워크, 도구는 계속 바뀌지만 문제를 구조화하는 능력, 코드의 의도를 설명하는 힘, 테스트와 리팩터링으로 품질을 유지하는 습관, 동료를 존중하며 협업하는 태도 같은 기본기는 몇 년이 지나 AI가 더 똑똑해져도 여전히 필요한 ‘기본기’라고 생각합니다. AI를 그 기본을 더 잘 실천하게 해 주는 도구로 쓰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Q. 마지막으로, 번역가로서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 꼭 전하고 싶은 한마디가 있다면요? A. 이 책을 정답을 알려주는 매뉴얼보다는 함께 고민하는 또다른 개발자의 기록으로 읽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책에 나오는 모든 방법이 모든 분께 그대로 맞지는 않을 텐데요. 다만 읽다가 마음에 걸리는 문장이나 아이디어를 한두 개만 건지셔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혹시 ‘나는 뒤처지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이 들어도 그 자체가 이미 좋은 출발점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불안 때문에 멈추지 않고, 작게라도 실험해 보고, 기록해 보고, 동료와 나누어 보는 것이 결국 우리를 앞으로 조금씩 밀어 줄 거라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