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수의 시대는 끝났다, 질문의 시대가 왔다: '바이브 엑셀'이라는 새로운 문법

AI 활용
엑셀 함수를 외우는 대신, 질문하는 법을 배우다
VLOOKUP 앞에서 멈칫한 적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의 첫 문장에서 이미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VLOOKUP(A2,Sheet2!A$1: D$100,3,FALSE)" — 저자 감자나라ai(오종현)는 이 한 줄의 수식이 주는 압박감에서 출발해, 챗GPT라는 완전히 다른 경로로 같은 목적지에 도달하는 법을 안내한다. '엑셀 대신 챗GPT: 함수 대신 프롬프트! 바이브 엑셀로 일하는 법'(한빛미디어, 2026년 3월).
나는 프로그래머도 아니고, 데이터 분석가도 아니다. Business Central ERP를 운영하고 Power Platform으로 업무 자동화를 구축하는, 비즈니스 프로세스 중심의 사람이다. 그런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건 묘한 해방감이었다. 엑셀은 내 업무에서 빠질 수 없는 도구인데, 솔직히 복잡한 함수 조합은 늘 부담이었다. SUMIF 범위를 잘못 잡아서 보고서 숫자가 틀어진 경험, 회사명 띄어쓰기 하나 때문에 집계가 누락된 경험 — 이런 게 쌓이면 엑셀 파일 자체가 불안의 대상이 된다. 저자는 바로 그 지점을 정확히 짚는다.
전체 구성은 7개 챕터, 252페이지. 제1장에서 "왜 엑셀 대신 챗GPT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지고, 제2장에서 SUM, IF, VLOOKUP 같은 실무 핵심 함수를 프롬프트로 대체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제3~4장에서 고객 분석, KPI 보고서, 재무 데이터, 텍스트(VoC) 분석까지 심화하고, 제5장에서 시각화, 제6장에서 GPTs 자동화, 제7장에서 Gemini·Claude 등 멀티 AI 도구 활용과 실무 프롬프트 패턴으로 마무리한다.
'바이브 엑셀' — 이 표현이 핵심이다
저자가 만든 '바이브 엑셀'이라는 개념이 이 책의 정체성을 규정한다. 안드레이 카르파티가 주창한 바이브 코딩(Vibe Coding)이 "코드의 존재를 잊어버리는" 수준의 자연어 기반 개발이라면, 바이브 엑셀은 "함수의 존재를 잊어버리는" 수준의 자연어 기반 데이터 분석이다. 복잡한 문법에 얽매이지 않고, 생각의 흐름 그대로 데이터를 다루는 경험. 옆자리 동료에게 부탁하듯 자연스럽게 질문하면 되는 방식.
ERP 운영자 입장에서 이게 왜 의미 있냐면, 우리가 다루는 데이터의 본질은 결국 '질문'이기 때문이다. "이번 분기 지역별 매출이 어떻게 되지?", "상위 10% 고객이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 이런 비즈니스 질문이 먼저이고, 함수는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그런데 엑셀에서는 수단이 목적을 압도하는 역전 현상이 늘 발생했다. 이 책은 그 관계를 원래대로 되돌려 놓는다.
실무자의 언어로 쓰인 프롬프트 교본
2장의 함수 대체 파트는 엑셀을 많이 써본 사람일수록 감탄하게 되는 구성이다. "거래는 총 몇 건이야?" 한 마디가 COUNT와 COUNTA를 동시에 대체한다. "총 구매액이 높은 순서대로 데이터를 다시 정렬해줘"가 정렬 대화상자에서 여러 단계를 거치는 과정을 한 문장으로 끝낸다. Quick Guide 형태로 엑셀 함수와 챗GPT 프롬프트를 나란히 비교하는 표가 있어서, 기존 엑셀 사용자가 바로 매핑해서 이해할 수 있다.
특히 인상적인 건 프롬프트 구성의 세 가지 원칙 — 역할(Role), 맥락(Context), 목표(Goal)를 데이터 분석 맥락에서 풀어낸 부분이다. "너는 15년차 데이터 분석가야"라고 역할을 부여하고, 데이터의 구조와 맥락을 설명하고, 원하는 출력 형태를 지정하는 흐름.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이라고 하면 뭔가 거창해 보이지만, 저자는 이걸 '동료에게 업무를 부탁하는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풀어낸다. Power Platform 교육을 할 때 비개발자들에게 자동화 개념을 설명하는 것과 비슷한 접근이라 공감이 됐다.
3장 이후가 진짜 힘을 발휘하는 구간
함수 대체까지는 사실 "아, 편하네" 수준이다. 이 책의 진가는 3장부터 드러난다. RFM 분석으로 고객을 세분화하고 그룹별 맞춤 전략까지 도출하는 과정, KPI 대시보드를 자동 생성하고 보고서 초안까지 뽑아내는 과정, VoC(고객의 목소리) 텍스트 데이터에서 긍정/부정 신호를 포착하는 과정 — 이건 엑셀 함수의 영역이 아니다. 엑셀로는 할 수 없거나, 하려면 피벗 테이블과 조건부 서식을 끝없이 조합해야 하는 작업들이다.
재무 데이터 챕터에서 지출 내역 카테고리화와 패턴 분석을 다루는 부분은 Business Central에서 차원(Dimension) 분석을 하는 것과 겹치는 지점이 있어서 흥미로웠다. ERP 안에서 구조화된 데이터로 하는 분석과, 엑셀 파일 위에서 챗GPT와 대화로 하는 분석이 서로 다른 결을 가지면서도 보완적이다. 특히 급하게 임시 분석이 필요한 상황 — 갑자기 경영진이 "이 데이터 좀 빨리 정리해서 보내줘"라고 할 때 — 에는 챗GPT 방식이 압도적으로 빠르다.
7장의 멀티 AI 도구 비교가 실용적이다
7장에서 Gemini와 Claude를 챗GPT와 나란히 놓고 비교하는 구성은 이 책의 차별점이다. Gemini의 초대형 컨텍스트 윈도우를 활용한 방대한 데이터 분석, Claude의 Extended Thinking과 Artifacts를 활용한 인터랙티브 대시보드 생성 — 단순히 "챗GPT만 쓰세요"가 아니라 도구별 강점을 상황에 맞게 선택하라는 메시지다. 실제로 Claude의 Artifacts로 React 기반 대시보드를 자연어만으로 생성하는 예제는, 프로그래밍을 전혀 모르는 사람도 전문가 수준의 시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다만 이 부분에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Microsoft Copilot in Excel에 대한 설명이 상대적으로 짧다는 것이다. 챗GPT에 파일을 업로드하는 방식과 엑셀 안에서 Copilot을 직접 쓰는 방식은 워크플로 자체가 다르다. 기업 환경에서 M365를 쓰고 있는 사용자라면 Copilot이 더 자연스러운 선택일 수 있는데, 이 부분의 비중이 좀 더 컸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이 책이 놓치고 있는 것
몇 가지 아쉬운 점도 있다. 첫째, 데이터 보안과 기밀성 이슈에 대한 논의가 부족하다. 기업의 매출 데이터나 고객 DB를 챗GPT에 업로드한다는 건, 보안 정책이 엄격한 조직에서는 바로 거부될 수 있는 행위다. 이 부분에 대한 가이드라인이나 대안(로컬 LLM, Azure OpenAI 등)에 대한 언급이 있었으면 더 실무적이었을 것이다.
둘째, 챗GPT의 할루시네이션 문제에 대한 경고가 좀 더 강조되었으면 한다. 저자가 "AI의 분석 결과는 항상 한 번 더 확인하세요"라고 언급하긴 하지만, 숫자를 다루는 영역에서 AI가 그럴듯하게 틀린 결과를 내놓을 때의 위험성은 일반 텍스트보다 훨씬 크다. ERP에서 파라미터 하나 잘못 설정하면 기업 전체 회계가 엉키는 것처럼, 챗GPT가 내놓은 집계 수치를 검증 없이 보고서에 넣는 건 위험하다.
그럼에도, 이 책은 읽을 가치가 있다
이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핵심 메시지는 명확하고 유효하다. 엑셀의 가치는 사라지지 않지만, 우리가 엑셀과 소통하는 방식은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 함수를 외우는 데 쓰던 시간을 더 중요한 판단과 창의적인 업무에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이제 데이터 분석은 '작업'이 아니라 '대화'다.
GPTs를 만들어 반복 업무를 자동화하는 6장의 내용은, Power Automate로 업무 흐름을 자동화하는 것과 철학적으로 같은 맥락에 있다. 도구는 다르지만, "반복을 줄이고 판단에 집중한다"는 원칙은 동일하다. 그리고 7장 마지막의 실무 프롬프트 패턴 정리는, 당장 내일 아침 출근해서 엑셀 파일을 열 때 바로 써먹을 수 있는 실전 치트시트다.
엑셀 함수에 좌절해본 적 있는 모든 사무직 종사자, 데이터 분석이 필요하지만 전문 분석가는 아닌 실무자, 그리고 AI를 '질문 도구' 이상으로 업무에 녹여내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한다. 252페이지짜리 이 얇은 책이 던지는 질문은 간단하다 — "당신은 아직도 함수를 외우고 있습니까?"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