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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플라이휠로 한눈에 보는 AI 생태계 : AI 산업은 어떻게 하나의 바퀴로 연결되는가

2001년, 시애틀. 아마존 주가는 최고점 대비 90% 넘게 추락한다. 재고는 쌓이고 적자는 계속되던 시기, 아마존 CEO 제프 베이조스는 경영 사상가 짐 콜린스에게 ‘플라이휠’이라는 개념을 듣게 된다.

 

처음 돌리기는 어렵지만 한 번 돌기 시작하면 앞선 움직임이 다음 움직임을 밀어 더 빠르게 도는 바퀴. 설명을 들은 베이조스는 냅킨에 원 하나를 그린다. 낮은 가격 → 더 많은 고객 → 더 많은 판매자 → 더 나은 선택지 → 다시 더 많은 고객… 

 

규모가 커지며 비용이 낮아지면, 다시 가격을 낮출 수 있다. 하나의 결과가 다음 단계의 연료가 되는 구조. 이것이 ‘아마존 플라이휠’이다. 이 책은 플라이휠에 관한 하나의 질문에서 출발한다.

 

“AI 산업에도 이런 바퀴가 있을까? 지금 몇 바퀴째 돌고 있나? 그리고 투자자는 바퀴 위 어디에 서야 하는가?”

 

 

 

내가 AI 산업을 하나의 플라이휠로 보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처음에는 퍼즐 조각만 보였다. 2015년부터 2018년 사이, 의료 AI 스타트업 루닛, AI 데이터 기업 크라 우드웍스, 로봇 스타트업 에이로봇 등에 엔젤투자를 하면서 AI가 소프트웨어 산업을 바꿀 것이라는 확신은 있었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반도체는 반도체, 에너지는 에너지, 로봇은 로봇이었다. 각각의 조각은 보이는데 이들을 맞추어 보여줄 퍼즐 판은 없는 상태였다.

 

그림이 달라지기 시작한 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현대자동차, LG전자, 한화그룹 등 한국 대기업의 전략기획 부문을 자문하면서였다. 반도체 회사의 고민은 AI 시대의 메모리 공급이었고, 에너지 관련 회사의 고민은 데이터센터 전력이었고, 자동차 회사의 고민은 자율주 행과 로봇을 위한 AI 기술 확보와 인프라 등이었다. 

 

따로따로 보면 각자의 문제다. 그런데한 발짝 물러서서 보니, 이들은 모두 같은 플라이휠 위에 서 있었다. 

 

반도체가 풀려야 데이터센터가 커지고, 데이터센터가 커지려면 전력이 필요하고, 전력이 풀려야 AI 모델이 강해 지고, AI 모델이 강해져야 자동차가 스스로 달릴 수 있다. 하나의 산출이 다음 단계의 연료가 되는 구조. 어디선가 본 패턴이었다. AI 산업에도 플라이휠이 있다. 나는 이 플라이휠을 ‘AI 플라이휠’이라 부르기로 했다. 이 AI 플라이휠을 한 바퀴만 돌려 보자.

 

 

1) 실리콘

 

2024년 봄, 경기도 이천. SK하이닉스의 공장에서 HBM3E 메모리 칩이 출하된다. 이 작은칩 안에는 16겹의 메모리 다이가 머리카락보다 가는 구멍 (TSV, Through-Silicon Via)으로 연결되어 쌓여 있다. 한 겹이 아니라 무려 16겹.이 정교한 적층 기술이 만들어내는 메모리 대역폭이, AI가 학습할 수 있는 모델의 크기를 결정한다. 칩의 행선지는 태평양 건너 오리건주. 엔비디아의 차세대 GPU에 탑재되어 거대한 데이터센터의 심장부로 들어갈 것이다. 이것이 플라이휠의 첫 번째 구간, 실리콘이다.

 

 

 

2) 에너지

 

그런데 이 데이터센터가 켜지려면 200메가와트의 전력이 필요하다. 중소 도시 하나를 밝힐 수 있는 양이다. 발전소가 있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발전소에서 만든 전기를 데이터센터까지 끌어오려면 송전선, 변전소, 인허가가 필요한데, 미국에서 이 인허가가 평균 4~5년 걸린다. 전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칩도 상자 속에서 잠자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것이 플라이휠의 두 번째 구간, 에너지다.

 

 

 

3)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

 

자. 전력이 들어왔다. 전력은 데이터센터 안에서는 수천 개의 GPU가 광케이블로 연결되어 하나의 거대한 두뇌처럼 작동시킨다. 여기서 중요한 건 개별 GPU의 성능이 아니다. GPU와 GPU 사이를 연결하는 네트워크의 속도가 전체 시스템의 성능을 좌우한다. 

 

이 연결이 느리면, 아무리 빠른 GPU를 가져다 놔도 대규모 AI 모델을 학습시킬 수가 없다. 마치 고속도로가 아니라 자전거 도로로 물류를 나르려는 것과 같은 상황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플라이휠의 세 번째 구간,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다.

 

 

4) 지능

 

이 거대한 두뇌가 수개월간 학습한 결과물이 차세대 AI 모델이다. GPT, 제미나이, 클로드 같은 이름이 붙는 이 모델들은 2가지 일을 한다. 하나는 더 크고 강력해지는 것이다. 더 많은 데이터를 먹고, 더 복잡한 추론을 하고, 더 다양한 형태의 콘텐츠를 만들어낸다. 

 

다른 하나는 작고 가벼운 버전으로 압축되어 세상 곳곳으로 퍼져나가는 것이다. 거대한 모델의 능력을 작은 칩에서도 돌릴 수 있도록 경량화하는 기술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것이 플라이휠의 네 번째 구간, 지능이다.

 

사진 출처: <정지훈의 AI 투자 강의> p.182

 

 

5) 디지털 AI

 

강력한 버전은 클라우드에서 돌아간다. 기업의 고객 서비스를 자동화하고, 개발자의 코드를 짜고, 크리에이터의 영상을 만들고, 변호사의 계약서를 검토한다. 이 서비스들이 돈을 벌게 된다. 기업 고객은 구독료를 내고, 개인 사용자는 프리미엄 요금을 낸다. 이것이 플라이휠의 다섯 번째 구간, 디지털 AI다.

 

 

6&7) 스페이셜 컴퓨트, 피지컬 AI

 

경량화된 버전은 또 다른 곳으로 향한다. 도시의 통신 기지국에 작은 AI 칩이 심어져 도시 전체에 실시간 추론 능력이 깔린다. 이 추론 인프라 위에서 로봇은 공장의 용접을 하고, 물류 창고에서 상품을 나르고, 도로 위에서 자율주행을 한다. 이것도 돈이 된다. 로봇 한 대가 연간 벌어들이는 수익이 로봇 가격을 3년 이내에 회수할 수 있다면, 기업은 더 많은 로봇을 주문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플라이휠의 여섯 번째와 일곱 번째 구간, 스페이셜 컴퓨트와 피지컬 AI다.

 

 

8) 자본

 

디지털 AI가 벌어들인 매출과 피지컬 AI가 벌어들인 매출에서 상당 부분이 다시 인프라 투자로 들어간다. 마이크로소프트는 2025년 한 해에만 AI 인프라에 80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선언했고, 구글과 아마존도 비슷한 규모의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이 돈으로 SK하이닉스는 더 많은 메모리를 만들고, TSMC는 더 많은 칩을 찍어내고, 데이터센터는 또 확장된 다. 이것이 플라이휠의 여덟 번째 구간이자 다시 첫 번째 구간으로 돌아오게 만드는 화살표인 ‘자본’이다.

드디어, 플라이휠이 한 바퀴 돌았다. 방금 우리가 걸어온 길이 아래 그림이다.

 

사진 출처: <정지훈의 AI 투자 강의> p.38

 

AI 플라이휠은 8개의 구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실리콘, 에너지,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 스페이셜 컴퓨트, 지능, 디지털 AI, 피지컬 AI, 자본. 각 구간은 앞 구간의 산출을 받아서 자기 역할을 하고, 그 산출을 다음 구간에 넘긴다. 플라이휠이 한 바퀴 돌면, 다음 바퀴는 이전보다 더 많은 연료를 갖고 시작하게 된다. 베이조스의 아마존 플라이휠과 같은 구조인 것이다.

 

비유를 하나 더 들어보자. AI 플라이휠은 자동차 엔진에 비유하면 실리콘은 피스톤이고, 에너지는 연료이고, 데이터센터는 실린더이고, 지능은 동력이고, 매출은 바퀴를 굴리는 토크 이며, 자본은 연료탱크를 다시 채우는 돈이다. 엔진의 어딘가가 막히면 전체가 느려지고, 막힌 곳을 뚫으면 전체가 빨라진다. 앞에서 살펴본 IT 역사의 플라이휠에서도 같은 패턴이 반복되었다. 병목을 찾고, 그 병목을 해소한 기업이 승자가 되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지금 어디가 막혀 있는지를 보는 것이다. 하나의 병목이 풀리면 바퀴는 다시 속도를 내고, 그 과정에서 다음 병목이 모습을 드러낸다. 어디가 막혀 있고, 그 병목이 어디로 이동하는지를 따라가다 보면 AI 산업의 다음 흐름도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위 콘텐츠는 『정지훈의 AI 투자 강의』내용을 기반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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