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회사에는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가 없어요”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반가운 소식을 알려드리자면 그건 오해입니다. 회사에 데이터가 없는 것이 아니라 아직 찾지 못했을 뿐이에요.
서비스와 고객이 있다면 회사 규모와 상관없이 데이터는 자연스럽게 쌓입니다.
UX/UI 디자이너, 프로덕트 디자이너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사용자가 남긴 흔적입니다. 자연스럽게 쌓이는 데이터에서 사용자의 흔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 고객이 언제 회원가입을 했는지
● 어떤 상품을 주로 구매했는지
● 재구매를 했는지 안 했는지
● 재방문을 얼마 만에 했는지
이런 정보는 ‘자, 지금부터 데이터를 쌓자!’라고 다짐하지 않아도 저절로 쌓입니다. 이것만으로도 사용자가 어떻게 서비스를 이용 하는지 파악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어떻게 하면 사용자 경험이 더좋아질까를 고민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데이터를 찾기 어려울까요?
회사에는 디자이너를 포함해 다양한 전문가들이 있습니다. 하는 일이 다르니 관리하는 데이터도, 사용하는 도구도 다릅니다. 이를 테면 마케팅팀은 고객 유입 경로와 전환율, 영업팀은 고객별 거래 내역과 영업 이력, CS팀은 고객 불만사항과 VOC를 관리하고 기록합니다. 도구도 엑셀, 워드, 노션 등 다양하고 심지어 개인 이메일이나 메모장에 따로 보관하는 경우도 있죠.
개인의 고유한 습관도 한 몫 합니다. 저마다 생활 습관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같은 일을 하는 사람끼리도 일하는 방식이 조금씩 다릅니다. 고객 데이터를 입력한다고 했을 때 어떤 사람은 일이 끝난 뒤 한꺼번에 입력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업무 시간에 틈틈이 기록할 수도 있습니다. 기록 방식도 제각각이어서 날짜를 ‘2025-03-25’로 쓰기도 하고 ‘25/3/25’라고 쓰는 사람도 있죠. 사용하는 용어마저 달라 누구는 ‘잠재 고객’이라고 쓰고 누구는 ‘유효 고객’이라고 씁니다.
어느 회사에 마케팅팀과 영업팀이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두 팀이 같은 데이터를 보더라도, 관점에 따라 수집하는 정보와 해석 결과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고객의 전환율에 대해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마케팅팀은 고객이 홈페이지를 방문한 시점을 전환으로 본다면, 영업팀은 상담 문의가 들어온 시점을 전환으로 볼 수 있죠. 이렇게 전환의 기준을 다르게 설정하면, 비록 동일한 데이터를 사용하더라도 전환율 수치는 달라지게 됩니다.
팀마다 원하는 데이터가 다르다는 점은 디자이너에게 혼란을 줄 수 있습니다.
데이터는 존재한다고 해서 바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데이터베이스(DB)에 로그로 남기도 하고 특정 프로그램 안에 숨겨져 있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보면 이렇습니다. 사용자의 로그인 기록은 개발 서버에 자동으로 쌓이지만 이 데이터를 확인하려면 먼저 데이터를 꺼내서 정리하는 과정이 필요합니 다. 컴퓨터 언어로 되어 있는 데이터를 사람의 언어로 바꾸는 작업을 거쳐야 하는 것이죠. 개발자 언어로 말하자면 ‘DB에 있는 회원 로그인 데이터를 보려면 로그를 추출하고 필터링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만약 ERP와 같은 고객 주문 관리 프로그램을 사용한다면 주문 데이터는 이 프로그램 안에 저장됩니다. 이를 다른 데이터와 연결해서 분석하려면 추가 작업이 필요하겠죠?
이처럼 정리되지 않은 상태의 데이터는 마치 책장이 무너진 거대한 도서관과 같습니다. 책은 분명히 도서관 안에 있지만 원하는 책을 바로 찾기는 어려운 상황인 거죠.
정리되지 않은 데이터는 디자이너가 바로 활용하기 어렵습니다.
자, 이제 회사 곳곳에 숨어있는 데이터를 찾아봤습니다. 이제 디자인에 활용해봐야겠죠. 그러나, 데이터가 필요하다고 해서 누군가 나에게 다가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 디자인에 필요한 데이터를 준비했습니다’라며 건네주지는 않습니다. 어떡하죠?
무작정 회사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데이터를 수집하고 정리하려고 하면 시간만 낭비하게 됩니다. 먼저 UX/UI 디자이너, 프로덕트 디자이너인 나에게 필요한 데이터가 무엇인지 정의하고 선별해야 합니다. 그런 다음 나에게 맞는 방식으로 정리정돈을 시작합시다. 다 같이 보는 데이터가 아니기에 나에게 가장 효율적인 조합으로 쓰면 됩니다.
저는 구글 스레드시트 + 노션 + 피그마를 조합해 사용합니다. 각 도구의 장점과 단점을 서로 보완하기 위해서입니다.
프로젝트별로, 비즈니스 목표별로, 상황별로 필요한 데이터는 모두 다르지만 언제든 쓸모 있는 데이터를 범용으로 수집해두면 그때그때 사용하기 편리합니다.
월별 방문자 수, 일별 방문자 수, 평일과 주말에 따른 방문자 수, 시간 대별 방문자 수, 첫 방문자 수, 재방문자 수 등 우리 서비스를 방문하는 다양한 방문자 수를 구글 스프레드시트에 내림차순, 오름차순 필터를 걸어서 볼 수 있게 해두면 좋습니다. 또한 추이를 살펴보기 위해 구글 스프레드시트에서 제공하는 통계표로 시각화해두는 것도 좋습니다.
페이지별 조회 수와 이탈 수 역시 쉽게 볼 수 있도록 구글 스프레드시트에서 필터를 걸어 정리해둡시다. 대부분 랜딩페이지 조회 수가 제일 높기 때문에 랜딩 페이지 외에 인기가 많은 페이지가 어디인지 확인해야 합니다.
더불어 이탈하는 것도 랜딩페이지가 제일 높습니다. 랜딩페이지 외에 어느 페이지에서 제일 많이 이탈하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페이지별 조회 수와 이탈 수는 함께 보면서 다양하게 추측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GA4 Google Analytics + 구글 스프레드시트 + 피그마 조합을 이용합니다.
GA4가 설치되어 있다면 각 페이지/화면별로 방문자 수가 자동으로 잡힙니다. 회원가입 플로flow, 회원 정보 수정 플로, 상품 결제 플로와 같이 목적을 기반으로 플로를 미리 만들어둔 뒤 해당 플로별로 페이지/화면 방문자 수를 GA4에서 확인합니다. 그리고 구글 스프레드시트에 수치를 적어둡니다. 그런 다음 피그마를 열어 주요 플로에 따른 화면을 배치해놓고 각 화면을 퍼널 지점으로 잡아 퍼널 수치를 적어두면 보기 편리합니다.
물론 피그마 작업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지만 저는 한눈에 파악하기 위해 이렇게 해두는 편입니다. 시간이 소요되는 작업이라 모든 플로를 다 하기보다는 ‘우리 서비스/프로덕트에 핵심’인 플로만 하면 됩니다.
구글 스프레드시트에 내림차순, 오름차순으로 볼 수 있도록 필터를 걸어 정리해둡니다.
두 종류의 사용자 데이터 모두 구글 스프레드시트에 내림차순, 오름차순으로 볼 수 있도록 필터를 걸어 정리해둡니다. 이때, 사용자 데이터는 개인 정보가 들어있기에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합니다. 개인을 특정할 수 있는 정보는 수집해서는 안됩니다.
이 두 가지 데이터는 노션에 날짜별, 유형별로 정리해두면 필요할 때 바로 확인할 수 있어 좋습니다.
노션 또는 피그마에 정리해둡니다. 바쁠 때는 그냥 캡처해서 피그마에 붙여 넣고 그 옆에 설명을 써 넣기도 했습니다.
캡처하여 피그마에 플로대로 정리해두면 좋습니다.
저는 한눈에 보고 싶어서 캡처해서 피그마에 정리해두곤 합니다. 하지만 검색과 업데이트가 불편하다는 단점이 있으니 빠르게 검색해서 보고 싶을 때는 노션이나 구글 스프레드시트를 이용하는 것도 괜찮습니다.
정답을 적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참고할 분석 자료를 적는 것이니 연습장처럼 쓰는 것이 필요하여 저는 피그마에 정리해서 생각을 뻗어나갑니다. 그리고 수집한 데이터에 대한 추론과 인사이트를 기록해둡니다. 예를 들자면 이런 식입니다.
이렇게 데이터를 수집하고 추론한 내용을 나만의 도구에 기록해두면 추후 디자인 의사결정이나 기능 기획 시 빠르게 근거 자료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또한 시간이 지나도 이 데이터를 왜 모아뒀는지 기억할 수 있죠.
추가로 내부 데이터는 데이터 업데이트 주기를 정해두는 것이 좋습니다. 오래된 데이터는 현재 상황을 반영하지 못할 수 있으므로 최신 데이터를 갱신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월 1회 정도가 적당하지만 사용자가 많거나 실험을 자주 하고 변화가 빠른 곳이라면 2주에 1회 빈도로 갱신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정답은 없으니 상황에 맞춰 내가 ‘주기적으로 업데이트’만 해주면 됩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협업 모드의 길을 터놓으면 좋습니다. 이렇게 모아서 정리한 데이터를 해당 데이터를 준 동료들에게 공유하면 됩니다. 그리고 같이 뭔가를 해볼 만한 것이 있으면 좋겠다는 뉘앙스를 덧붙이는 것입니다. 실제로 사용자 경험 설계는 혼자서 하기보다는 다른 팀과 협업해 진행하는 것이 좋습니다. 회원가입이든, 상담 신청이든, 결제 관련이든 결국 그 구간에서의 결과물은 다른 팀의 성과로도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물론 필수는 아닙니다. ‘내가 필요해서 이렇게 정리했으니 언제든 필요하다면 함께 보면 좋겠다’라는 취지로 먼저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러면 시간 내서 데이터를 전달해준 동료들도 보람을 느끼고 마음을 엽니다.
데이터는 없는 것이 아니라 발견되지 않은 것입니다. 아무도 발굴하지 않아 어딘가 묻혀 잠자고 있는 유물 같은 것이죠. 그러니 발견하는 것까지만 해도 괜찮습니다.
위 글은 『데이터 삽질 끝에 UX가 보였다』내용을 재구성하여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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