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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을 NPC처럼 대하는 아이들: "AI가 채워줄 수 없는 관계의 힘"

 

 

엘리베이터에서 이웃 어른이 말을 건네도 눈을 마주치지 않고 지나가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마치 게임 속에서 말을 걸어오는 NPC를 스쳐 지나가듯 사람을 대하는 모습입니다. 최근 이런 현상을 두고 '타인의 NPC화'라는 표현까지 등장했습니다. 눈앞에 있는 사람을 나와 상관없는 배경 캐릭터처럼 여기는 태도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AI와의 대화가 일상이 된 환경은 이런 변화와 함께 살펴볼 중요한 배경 중 하나입니다.

 

 

 

 

 

AI가 편안한 이유, 그리고 그 편안함이 만드는 결핍

 

AI는 사용자의 말을 끊지 않고 공감하며 거절하지 않습니다. 늦은 밤에 말을 걸어도 언제나 대답하고 판단하거나 눈치를 주지도 않습니다. 이런 편리한 대화에 익숙해질수록 진짜 사람과의 관계는 상대적으로 어렵게 느껴집니다. 사람은 내 뜻대로 반응하지 않고, 때로는 거절하거나 오해하기도 합니다. 그 관계에는 불편함과 기다림, 서로 맞춰가야 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 지점이 AI 시대의 가장 깊은 결핍으로 꼽힙니다.

 

관계를 맺는 힘은 이러한 불편함을 피하지 않고 견디는 데서 자랍니다. 소셜 미디어와 AI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둘 다 불편한 순간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알고리즘 기반의 피드는 선호할 만한 콘텐츠만 계속 보여주고, AI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마음에 들지 않는 답이 오면 대화를 그만두면 그만입니다. 거절당하는 경험도,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인정해야 하는 순간도 모두 피할 수 있습니다. 반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대부분 이러한 불편함 위에서 이루어집니다. 의견이 다른 친구와 계속 대화를 이어가는 일, 다투고 다시 화해하는 일이 쌓이면서 관계를 맺는 힘이 자랍니다. 이 훈련이 충분하지 않으면 사람과의 관계에서 작은 불편함만 느껴도 다시 AI로 돌아가기 쉽습니다.

 

 

 

 

 

줄어드는 대화, 늘어나는 침묵

 

이 변화는 이미 여러 연구를 통해 확인되고 있습니다. 애리조나 대학교의 사회심리학자 마티아스 멜(Matthias Mehl) 연구팀에 따르면, 사람들이 하루 동안 말하는 단어의 수는 2005년부터 2019년 사이 약 28% 감소했습니다. 하루 평균 1만 6천 개였던 발화 단어가 14년 만에 1만 2천 개 수준으로 줄어든 것입니다. 연구팀은 사라진 것이 가족이나 친구와 나누는 긴 대화가 아니라, 계산원에게 도움을 청하거나 낯선 사람에게 길을 묻고 이웃과 안부를 나누는 짧고 우연한 대화라고 설명했습니다. 일상이 효율적으로 바뀔수록 사회적 연결은 조금씩 옅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무선 이어폰도 한몫을 합니다. 이어폰은 주변 사람들에게 '말 걸지 말아 달라'는 무언의 신호처럼 작동하고, 그 결과 낯선 사람과 나누던 짧은 대화가 일상에서 하나둘 사라지고 있습니다. 저널리스트 마컴 하이드(Markham Heid)는 이 현상을 '에어팟 이펙트'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서식스 대학교의 심리학자 질리언 샌드스트롬(Gillian Sandstrom)은 이러한 사소한 대화들이 쌓여 '사람들은 대체로 선하고, 나는 누구와도 이야기할 수 있으며, 이 세상에는 내 자리가 있다'는 감각을 만든다고 설명합니다. 측정하기는 어렵지만 누구에게나 필요한 감각이며, 부모가 아이에게 물려줘야 할 자산이기도 합니다.

 

 

 

 

 

파라소셜 관계의 현실화

 

사람과의 대화가 희귀해질 것이라는 우려는 더 이상 막연한 예측이 아닙니다. 케임브리지 사전은 2025년 올해의 단어로 '파라소셜(Parasocial)'을 선정했습니다. 원래 이 단어는 팬이 연예인을, 시청자가 드라마 속 인물을 일방적으로 좋아하며 형성되는 관계를 뜻하는 학술 용어였습니다. AI는 대화를 기억하고 취향을 학습하며 원하는 방식으로 응답하기 때문에, 일방향 관계가 아니라 양방향 관계처럼 느껴지는 환상을 만들어냅니다.

 

이 현상은 이미 현실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2025년 여름 일본 오카야마에서 한 32세 여성이 챗GPT로 만든 AI 캐릭터와 상징적인 결혼식을 올렸으며, 같은 해 11월 현지 방송을 통해 알려졌습니다. 그녀는 AI가 과거의 어떤 연인보다 자신을 더 잘 이해한다고 밝혔습니다. 미국에서 성인 1,000여 명을 조사한 결과 28%가 AI 챗봇과 친밀하거나 낭만적인 관계를 경험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으며, 미국 오하이오 주에서는 인간과 AI의 결혼을 법적으로 무효화하는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습니다.

 

 

 

 

 

다른 마음을 이해하는 능력, 관계의 진짜 출발점

 

그렇다면 관계를 맺는 힘은 어떻게 자랄까요. 발달심리학에서는 나와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마음이 서로 다를 수 있음을 이해하는 능력을 조망수용능력이라고 부릅니다. 어린아이는 처음에 세상을 자기중심적으로 바라봅니다. 내가 슬프면 친구도 슬프고, 내가 하고 싶은 놀이는 친구도 하고 싶을 것이라 여깁니다. 하지만 또래와 부딪히고 화해하는 경험을 반복하면서 아이는 조금씩 "저 친구의 마음은 내 마음과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이 깨달음이 관계를 배우는 첫걸음입니다.

 

 

이 능력은 갈등을 대신 해결해주는 방식으로는 자라지 않습니다. 아이가 친구와의 갈등을 이야기할 때 곧바로 해결책을 제시하기보다, 감정을 구체적인 언어로 짚어주고 상대에게도 다른 마음이 있을 수 있음을 함께 들여다보게 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과 상대가 원하는 것이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그럼에도 다시 손을 내밀어보는 경험이 쌓일 때 아이는 사람 사이의 다름과 불일치를 견딜 수 있는 사람으로 자랍니다.

 

AI 콜센터가 늘어나면서 오히려 사람 상담원의 가치가 높아진 것과 같은 원리로,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능력은 AI가 똑똑해질수록 더 희귀한 경쟁력이 됩니다. 매끄럽고 빠른 답을 얻는 일은 점점 쉬워지지만, 나와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불편한 감정을 견디며 관계를 이어가는 일은 여전히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영역입니다. 이 능력이 아이 안에서 어떻게 자라나는지, 그리고 부모가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은 『AI 시대, 부모로 살아가기』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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