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아이가 저녁 식탁에서 부모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엄마, AI가 영어 번역도 잘하고 글쓰기도 잘하고 코딩도 잘하잖아. 그럼 나는 왜 공부해야 해?" 그날 밤 그 부모는 쉽게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아이의 질문이 틀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실마리를 자율주행과 학습 실험 데이터, 그리고 질문하는 방식에 관한 논의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자율주행차는 버튼 하나로 목적지까지 이동할 수 있습니다. 경로 탐색과 장애물 회피, 가속과 제동까지 시스템이 대신 처리합니다. 그런데도 차를 깊이 이해하는 사람은 여전히 직접 운전대를 잡고 싶어 합니다. 엔진 소리와 코너링 시 차체 반응을 감각적으로 느끼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자동차의 작동 원리를 알수록 그 도구와 맺는 경험의 깊이가 달라집니다.
아이의 공부와 AI의 관계도 같은 구조로 설명됩니다. AI는 답을 만들어줄 수 있지만, 그 답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은 AI를 전혀 다르게 활용합니다. 수학의 원리를 아는 사람은 AI의 계산 오류를 찾아낼 수 있고, 역사적 맥락을 아는 사람은 AI가 그럴듯하게 만들어낸 잘못된 정보를 걸러낼 수 있으며, 글쓰기의 구조를 아는 사람은 AI가 만든 문장의 어색한 부분을 자신의 의도에 맞게 다듬을 수 있습니다. 기초 지식은 AI를 더 정교하게 활용하기 위한 토대로 작동합니다.
여기서 핵심은 결과물의 점수가 아니라 그 점수에 도달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AI는 클릭 한 번으로 80점 수준의 결과물을 만들어냅니다. 하지만 0점에서 80점까지 올라가는 과정은 단순히 결과를 만드는 시간이 아니라, 문제를 어떻게 나누어 생각하는지, 막혔을 때 어디서 힌트를 찾는지, 틀린 부분을 어떻게 찾아내는지를 익히는 시간입니다. 아이가 이 과정을 전부 AI에게 맡기면 정답은 얻을 수 있어도 사고력을 키우는 경험 자체는 줄어들 수 있습니다.
이 내용을 뒷받침하는 실험 결과가 있습니다. 2026년 1월 OECD가 발표한 「Digital Education Outlook 2026」에 인용된 튀르키예의 실험입니다. 이 실험은 고등학생 약 1,000명을 세 그룹으로 나누어 수학을 가르쳤습니다. 한 그룹은 교과서로, 한 그룹은 일반 챗봇으로, 나머지 한 그룹은 학습을 돕도록 설계된 튜터형 AI로 학습했습니다.
연습 과정에서의 점수는 일반 챗봇 그룹이 48%, 튜터형 AI 그룹이 127%까지 상승했습니다. 그러나 AI 없이 시험을 치르게 하자 결과는 달라졌습니다. 일반 챗봇으로 공부한 그룹은 정답률이 오히려 17% 하락했고, 이는 교과서로 혼자 공부한 학생보다도 낮은 수치였습니다. 반면 학습용으로 설계된 튜터형 AI를 활용한 그룹은 성취도가 그대로 유지되었습니다.
이 결과가 보여주는 것은 단순합니다. AI를 답을 얻는 도구로만 사용하면 실력이 떨어지고, 생각을 돕는 도구로 사용하면 배움이 남는다는 것입니다. 성적은 오르는데 실제 실력은 제자리이거나 오히려 떨어지는 현상은 아이의 학습에 AI를 활용할 때 부모가 가장 경계해야 할 지점입니다.

발달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만 6세부터 12세 사이는 정보를 분류하고 비교하며 가설을 세우고 검증하는, 이른바 생각의 회로가 활발하게 만들어지는 시기입니다. 이 시기에 사고 과정 전체를 AI에 맡기면 아직 형성 중인 아이의 사고 능력에 다른 방식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이미 사고 체계가 자리 잡은 성인이 AI라는 도구를 얹어 활용하는 것과, 그 체계 자체를 만들어가는 아이가 AI를 만나는 것은 서로 다른 조건입니다
이 지점에서 공부의 의미도 달라집니다. 이전까지 학습이 답을 직접 만들어내기 위한 과정이었다면, 지금은 AI가 만든 답을 평가하고 활용하기 위한 과정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도구가 바뀐 것이 아니라 그 도구를 다루는 사람의 역할이 달라진 것입니다.
OECD가 분석한 한국 교육의 특징은 이 변화의 무게를 구체적으로 보여줍니다. 기초학력은 최상위권이고 수학과 과학의 기계적 풀이 능력도 높은 수준이지만, 사실과 의견을 구분하는 능력은 25%에 그쳤습니다. 이는 OECD 평균인 47%의 절반 수준입니다. 시험 성적은 높지만 주어진 정보가 사실인지 의견인지를 판별하는 힘은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의미입니다. 이 능력은 AI가 만들어내는 정보 속에서 진짜와 그럴듯한 오류를 구분해야 하는 지금, 아이에게 필요한 핵심 역량으로 꼽힙니다.
노벨상 수상자 데미스 허사비스 역시 AI가 모든 것을 대신하는 시대에 배움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한 질문을 받아왔습니다. 그가 반복해서 전하는 답은 "배우는 것을 배우는 것(Learning how to learn)"입니다. 특정 지식을 쌓는 것보다, 새로운 것이 등장했을 때 이를 빠르게 이해하고 활용하는 능력, 즉 배우는 힘 자체를 기르는 것이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는 환경에서 더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배우는 힘은 아이에게 어떻게 길러질까요. 교육학에서는 스스로 생각을 꺼내게 돕는 질문을 발문(發問)이라고 부릅니다. 흔히 쓰는 질문과는 방향이 다릅니다. 질문이 아이의 답을 확인하려는 것이라면, 발문은 아이가 스스로 답을 찾아가도록 돕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이 색은 무슨 색이야?"는 질문이고, "이 색을 선택한 이유가 뭐야?"는 발문입니다. 같은 대상을 두고도 묻는 방식에 따라 아이가 작동시키는 사고 회로 자체가 달라집니다.
아이의 질문에 부모가 곧바로 정답을 주면, 아이 앞에는 그 답을 받아들이거나 반발하는 두 가지 선택지만 남습니다. 반면 질문을 되돌려받으면 다른 회로가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자기 자신과 대화하는 회로입니다. 밖에서 주어진 답은 아무리 정교해도 아이 곁에 오래 머물기 어렵지만, 스스로 찾아낸 답은 아이의 가치관이 되고 삶의 방향을 알려주는 나침반이 됩니다. AI가 아무리 그럴듯한 답을 내놓아도 그것이 아이 자신의 답이 아니라면 쉽게 흔들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AI가 대신 답을 만들어주는 시대일수록 아이에게 정작 중요한 것은 답을 만드는 능력이 아닙니다. 왜 이 답이 필요한지 아는 힘, 그리고 이 답이 진짜인지 판단하는 힘입니다. 이 두 가지는 부모가 대신 만들어줄 수 없는, 아이가 스스로 경험하고 찾아야 하는 역량입니다. 이러한 사고력이 자라나는 과정과 AI 시대의 학습에 관한 더 구체적인 논의는 『AI 시대, 부모로 살아가기』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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