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수 (『직장인을 위한 AI 업무 설계의 기술』저자)
일요일 오후에 편집자에게서 카톡이 왔습니다. 인쇄 이틀 전이었습니다. 책의 부록을 그대로 따라 해 봤는데, 책이 "이런 대답이 나온다"고 써 둔 자리에서 AI가 다른 것을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확인해 보니 AI는 규칙을 못 읽은 게 아니라 읽고 곧바로 실행해 버린 것이었고, 틀린 쪽은 대답의 문장까지 약속해 둔 원고였습니다.그날 저녁에는 1장에 실은 앱 화면이 그새 또 바뀌었다는 연락이 왔고, 그림 네 장을 다시 찍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그날 제일 먼저 온 감정은 당황이 아니라 피로였습니다.

AI를 쓰는 분이면 다 아시는 피로입니다. 어제 익힌 화면이 오늘 바뀌고, 같은 것을 물었는데 답이 어제와 다르고, 팀에 안내문을 돌린 지 한 달인데 벌써 화면이 안 맞습니다. 그리고 그 피로 밑에는 조금 더 오래된 감정이 하나 깔려 있습니다. 이게 결국 내 자리를 대신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입니다.
저는 2002년부터 게임을 만들어 온 기획자입니다. 기획서를 쓰고, 밸런스 표를 만들고, 회의록에서 결정을 건져 내고, 그것을 팀에 설명하는 일이 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들은 하나같이 AI가 잘하는 일입니다. 문서를 뽑고, 표를 채우고, 회의록을 요약하는 일. 24년 동안 쌓은 것이 정확히 AI가 대신할 수 있는 모양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는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책 『직장인을 위한 AI 업무 설계의 기술』은 그 불안을 안고, 그 불안을 정면으로 들여다보며 쓴 책입니다.
돌이켜 보면 저는 늘 반복을 견디지 못하는 쪽이었습니다. 첫 직장이던 손노리에서 일본판 로컬라이징 표를 손으로 옮기다가 매크로를 짰고, 그라비티에서 라그나로크를 만들 때도, 네오위즈에서 블레스를 만들 때도, 위메이드에서 미르를 만질 때도, 두 번 손으로 하는 일이 생기면 엑셀 매크로나 스크립트로 바꿔 두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게임을 고를 때도 그렇습니다. 제 플레이 시간 1위는 덱을 짜서 같은 판을 수백 번 돌리는 게임이고, 그다음은 공장을 자동화하는 퍼즐 게임 시리즈를 전부 깬 기록입니다. 불확실한 것을 데이터와 계획으로 눌러 두어야 마음이 놓이는 성격이라, 자동화는 취미라기보다 버릇에 가까웠습니다.
그래서 AI가 왔을 때 제 첫 반응은 열광이 아니라 계산이었습니다. 이것이 내 일의 어디까지를 먹을 수 있는가. 답은 생각보다 빨리 나왔습니다. 원고를 쓰던 어느 날, 팀 자산 현황을 정리하라고 자료를 건넸더니 AI가 자료에 있는 수치는 정확히 옮겨 놓고 그 아래 "비용 대비 효과" 절에 4.2배, 68% 절감, 월 600만 원가량이라는 숫자를 채워 넣었습니다. 셋 다 자료에 없는 값이었습니다. 속이려던 게 아니라, 이런 슬라이드라면 이런 숫자가 있어야 한다는 습관대로 빈칸을 메운 것이었습니다. 형식은 완벽했습니다.
그날 저는 두 가지를 동시에 알았습니다. 하나는 제가 하던 일 중 형식이었던 부분은 정말로 넘어간다는 것. 다른 하나는 그 형식이 완벽할수록 그 안의 숫자가 어디서 왔는지를 묻는 사람이 더 필요해진다는 것. 이 책은 그 두 번째 사람이 되는 법에 관한 책입니다.
이 책은 어느 회의실에서 시작됐습니다. 화면에 "AI 도입으로 생산성 3~5배 향상"이라는 슬라이드가 떠 있었고, 누군가 그 숫자는 어디서 나왔느냐고 물었고, 발표자는 답하지 못했습니다.
서점의 AI 책 대부분은 "이렇게 물으면 이런 답이 나온다"에서 멈추는데, 진짜 통증은 답이 나온 다음에 옵니다. 그 안의 숫자는 누가 확인하는가, 틀린 채 올라가면 책임은 누구에게 가는가, 팀원 다섯이 각자 AI를 쓰는데 왜 결과물은 더 제각각이 됐는가.

저는 이것을 세 단계로 나눴습니다. 먼저 AI를 쓰는 법, 다음은 잘된 방법을 실제 업무에 반복해서 쓰는 운용, 마지막은 그 결과를 어떻게 확인하고, 또 비용과 책임을 어떻게 관리할지 팀의 기준을 세우는 거버넌스입니다. 책은 다섯 부인데, 앞의 세 부는 혼자 하는 일이고 뒤의 두 부는 팀에서 하는 일입니다.

혼자 하는 일은 이렇습니다. AI를 내 업무 파일과 연결해 직접 읽고 고치게 하고, 내가 하는 일과 중요한 규칙을 미리 알려 둡니다. 그래서 매번 같은 설명을 반복하지 않아도 되게 합니다. 회의록에서는 결정과 담당자, 근거, 다음 행동을 뽑게 하고 AI가 내놓은 답은 바로 쓰지 않고 한번 더 확인합니다.
이때 작업을 맡기기 전에 ‘못 세 개’를 박습니다.
❶ 자료에 있는 숫자만 쓸 것 ❷ 값이 없으면 없다고 드러낼 것 ❸ 근거를 못 대는 주장은 본문에 넣지 말 것. 환각은 없애려 하지 않고, 나온 답을 세 단계로 나눠 다시 확인합니다.
중요한 결정은 나중에도 찾을 수 있게 기록하고, 하나를 바꿨을 때 어떤 문서가 영향을 받는지도 확인할 수 있게 합니다. 반복되는 일은 다시 쓸 수 있는 방식으로 만들어 두고, 실제로 쓰지 않는 것은 정리합니다.

반면 팀에서 하는 일은 조금 다릅니다. AI가 참고하는 자료와 비용에 한도를 두고, 어떤 정보까지 외부 AI에 넣어도 되는지 데이터의 경계(기준)을 정합니다. AI가 틀렸을 때 누가 확인할지도 미리 정합니다. 그리고 팀이 도구를 거부하는 신호를 읽고 철수 기준을 세웁니다. 그리고 하루 끝에 오늘 같은 일을 두 번 손으로 한 것이 무엇인지 적고, 같은 교훈이 세 번 반복되면 정식 규칙으로 올립니다. 편집자 화면의 AI가 "아직 한 번뿐이라 정식 규칙으로 올리지는 않는다"고 적어 둔 것이 바로 이 규칙이었습니다.

그 한 벌을 이 책은 하네스라고 부릅니다. 말에 채우는 마구를 뜻하는 말인데, 요즘은 고양이나 강아지를 산책시킬 때 목줄 대신 앞다리에 씌우는 것도 하네스라고 부릅니다. 목을 조르지 않습니다. 힘을 줄이지 않고 방향만 잡아 줍니다.
AI에게 무엇을 맡길지, 어디까지 맡길지, 결과를 무엇으로 확인할지를 미리 적어 두고 AI가 필요할 때 알아서 참고할 수 있는 파일 몇 개와 규칙 몇 줄. 부록에 그 시작용 파일 한 벌을 그대로 넣고 저장소에 공개해 두었습니다.

이 원고를 다듬는 동안에도 새 모델이 나왔고, 인쇄 이틀 전에 앱 화면이 바뀌었습니다. 저는 변화의 한가운데 서 보는 것이 처음은 아닙니다. 전화선 너머 PC통신으로 컴퓨터 저편의 사람과 처음 대화하던 학생이, 인터넷 위에서 일을 배웠고, 모바일이 산업 하나를 통째로 뒤집는 것을 현장에서 겪었습니다.
그때마다 우리는 새 도구를 장난감처럼 구경하다가 어느 날부터 그것 없이는 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다만 이번 파도는 결이 다릅니다. 예전에는 파도가 지나가고 나서야 세상이 변한 것을 알았는데, 이번에는 변하는 속도가 눈에 보입니다.
고백하자면 저는 낙관적 허무주의자입니다. 세상이 우리에게 정해 준 의미는 없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무엇에 의미를 둘지는 전적으로 우리가 정한다고 오래 생각해 왔습니다. 그 눈으로 보면 도구가 낡는 것은 슬픈 소식이 아니라 그냥 사실입니다. 이 책에 적힌 도구들도 언젠가 낡을 것이고, 멀리 갈 것 없이 인쇄 이틀 전에 한 번 낡았습니다. 완성된 도구란 없었습니다. 고쳐 쓰는 손이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바로 거기서 낙관이 시작됩니다. 정해진 의미가 없다는 것은 의미를 정하는 자리가 비어 있다는 뜻이고, 그 자리는 AI가 앉을 수 없는 자리입니다. 어떤 숫자를 믿을지 정하는 눈, 왜 그렇게 정했는지를 남기는 기록, 같은 실수를 두 번 하지 않게 스스로 도는 회고. 이 책이 끝내 남기려 한 것은 화면과 기능이 아니라 그 자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AI는 자주 틀립니다. 자료에 없는 숫자를 지어낸 것도 AI였고, 그래서 이 책의 절반은 AI를 의심하고 검증하는 방법입니다. 다만 일요일 오후부터 월요일 아침까지 벌어진 일에서는 틀린 쪽이 AI가 아니라 사람이었습니다. 문장을 약속한 원고와, 확인을 건너뛴 저였습니다. AI를 믿어서가 아니라, 어느 쪽이 틀렸는지를 매번 확인했기 때문에 알 수 있었던 일입니다. 그리고 그 틀린 자리마다 규칙이 한 줄씩 늘었습니다. 대체될지 모른다는 불안에 대한 제 답은 그것입니다. 대체되는 것은 형식이고, 남는 것은 그 자리입니다.
저는 제가 남기는 것들이 누군가의 책상에 작은 온기로 닿기를 바라며 이 책을 썼습니다. 급류 한가운데서 발 디딜 돌 하나가 되어 준다면, 제 몫은 다한 것입니다.
AI로 이메일을 다듬고, 회의록을 요약하고, 보고서 초안을 만드는 일은 이제 익숙해졌습니다. 하지만 매번 같은 업무를 다시 설명하고, AI가 만든 결과를 처음부터 다시 확인하고 있다면 아직 AI를 ‘도구’로만 쓰고 있는 것일 수 있습니다.
『직장인을 위한 AI 업무 설계의 기술』은 AI가 내 업무의 맥락과 규칙을 이해하고 반복해서 일하도록 만드는 방법을 알려 주는 실무 안내서입니다. 회의록에서 결정과 할 일을 뽑고, AI가 모르는 내용을 함부로 채우지 않게 하며, 잘된 방법은 다음에도 다시 쓸 수 있도록 만드는 과정을 쉽게 설명합니다.
복잡한 코딩 없이도 따라갈 수 있으며, AI를 업무에 활용하는 직장인이라면 폭넓게 적용할 수 있습니다. 단순한 챗봇 활용을 넘어, AI를 실제 업무에 정착시키는 나만의 업무 시스템을 만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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