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은 불편함을 새롭게 인식하는 데서 출발한다. 모두가 이 불편함에 익숙해져서 더 이상 문제를 느끼지 못할 때, 아주 소수의 사람은 문제가 무엇인지를 깨닫는다. 그리고 그 중 누군가가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면, 그것은 마치 바다로 향하는 물길을 낸 것과 같이 빠르게 확산된다. 그리고 가끔은 지평선을 바꾸게 된다.
20년 전 인터넷이 그랬다. 인터넷 기술과 그 위의 월드와이드웹(WWW)은 인류의 모든 정보를 연결해주었다. 그리고 10년 전에는 스마트폰이 혁신의 기수를 이어받았다. 스마트폰은 시간과 장소의 제약을 없애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연결해주었다. 이제 우리는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을 상상하기도 힘들어졌다. 그러면 앞으로 10년간은 어떤 혁신이 찾아올까? 어쩌면 그에 대한 해답은 나카모토 사토시가 만든 비트코인과 블록체인 기술이 쥐고 있을 지도 모른다.
사실 금융 분야는 자세히 살펴보면 이상한 점이 많다. 은행은 대출 금리는 정부 정책에 맞춰서 즉시 올리지만, 예금 금리의 인상은 상당한 시차를 두고 반영한다. 신용카드 회사는 기준 금리가 1%밖에 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수십 퍼센트에 육박하는 대출 금리를 부과한다. 이런 일들은 정부 기관과 은행 같은 몇몇 최상위 기관이 시장을 감시하고 신뢰를 인증하는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리고 이 체제는 이미 몇 세기 동안이나 나름 잘 동작하고 있어서 우리는 그다지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만약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공개적인 장부가 있고 모든 거래가 여기에 기록된다면, 우리는 정부나 은행 같은 감독/중개기관이 더는 필요하지 않다. 블록체인은 바로 이 지점을 파고들었다. 블록체인은 모두가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공개된 장부이다. 누구나 거래내용을 읽고 사용할 수 있지만, 위/변조할 수는 없는 장부 말이다. 블록체인 기술을 사용하면 전 세계 컴퓨터와 네트워크가 신뢰성을 보장할 수 있는 매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프라인에서 중개자로서의 제삼자 기관을 대신해서 말이다.
블록체인을 통한 거래는 실시간으로 누구나 투명하게 조회할 수 있다. 각 거래는 검증 과정에 모든 사용자가 참여하므로 위변조가 사실상 불가능하며, 특정 기관/나라/통화 등의 주체에 위험이 집중되지도 않는다. 사용자가 늘수록 안전성이 더 강화된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처음에는 그저 괴짜들의 장난 정도로 생각했던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등의 암호화폐들은, 지금 1비트코인당 몇백만 원에 달하는 유례 없는 높은 가치를 자랑하고 있다.
또한 블록체인은 거래의 투명성과 더불어 익명성도 보장할 수 있다. 당연히 부정적인 측면도 만만치 않다. 불법을 넘나드는 분야에서 특히 환영받는다. 얼마 전에 국내 유명 호스팅 회사의 서버 153대가 해킹으로 인해 랜섬웨어에 감염되었다. 모든 중요 파일이 암호화되어 정상 가동이 불가능하게 된 것이다. 해커는 약 30억 원을 비트코인으로 지불하면 랜섬웨어의 해제 암호를 알려주겠다고 회사 측에 요구했다. 그리고 해당 회사는 협상 끝에 13억 원어치의 비트코인을 구매하여 해커에게 전달했다. 암호화폐가 범죄자에게도 익명성을 보장하므로 가능한 이야기이다. 사람 뿐 아니라 모든 사물까지 인터넷에 연결되는 사물인터넷(IoT) 시대에는 이런 종류의 위협이 더 커질 수 있다. IT 기술이 뛰어난 어떤 이들은 익명성을 통해 개인에게 부과되는 제약이 줄어들수록 범죄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게 될 지도 모른다.
블록체인은 비트코인이라는 암호화폐의 모습으로 처음 등장해서 전 세계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이 추세대로라면 앞으로는 금융을 넘어서, 소수의 공인된 중개자가 신뢰성을 보장해야만 하는 다른 분야에도 도입될 가능성이 높다. 내부적으로 큰 기술적인 결함이 발견되지 않는다면, 블록체인 기술은 인공지능과 더불어 10년 후의 미래를 열어갈 주요 키워드 중 하나가 될 것 같다.
그래도 한 가지는 주의해야 한다. 이 책의 저자인 윌리엄 무가야는 인기있는 암호화폐의 하나인 이더리움 재단의 특별고문이다. 다른 많은 블록체인 관련 사업에도 참여하고 있다. 저자 스스로가 블록체인이 뛰어난 기술이라고 사람들이 받아들일수록 이익을 보는 편에 서 있기 때문에, "충격", "혁명", "혁신" 등의 단어가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이 책에 대한 약간의 비판적 읽기는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