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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미디어

독자리뷰

[IT/모바일] AI 트루스 (임백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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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7

AI 트루스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는 건 AI가 아니라 인간 자신이다!” 2034년 미래 예측부터 인간의 욕망까지 기술과 철학을 넘나드는 인공지능 특강

  • 저자 : 임백준
  • 출간 : 2024-08-20

AI로 인한 급격한 발전은 보통 두 가지의 관점으로 비추어진다. 하나는 기술이 인간의 효율성을 크게 향상시킬 것이라는 낙관론, 다른 하나는 인간의 결과물을 카피한 AI가 인간을 멋대로 대체한다는 부정론이다. 실제로 X(트위터)의 '사용자가 X에 업로드한 게시글이나 자료는 AI를 학습시키는 자료에 활용할 수 있으며, 업로드 시 사용자는 이에 동의하는 것으로 간주한다'는 개정된 약관은 사용자들로 하여금 상당한 반감을 불러왔으며 몇 명의 사용자는 자신의 콘텐츠를 모두 삭제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AI의 명암을 바라본다면 그 논쟁은 끝도 없을 것이고 나 역시 AI 관련한 여러 권의 책을 읽으면서 이 시대에서 어떻게 인간으로서 실존해야 할지 늘 고민하고 있다. <AI 트루스>는 그 회색 지대에서 인간의 실존을 바라보나 AI의 문제를 일체 부정한다. 저자는 AI가 아니라 그것을 멋대로 예찬하거나 배척하는 인간과 그 인간이 만드는 시스템에 주목하고 있다.

 

인공지능으로 인한 가장 큰 변화는 지적 노동의 감소와 가속화이다. 들여야 하는 인력이나 시간은 확 줄어드나 더 적은 시간에 많은 일을 해치울 수 있으니 기업 입장에서 굳이 인간에게 월급을 줄 이유가 없어지는 것이다. 법률이나 경제 등 다양한 분야가 등장하지만 특히 강조되는 것이 코딩인데, 실제로 나도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GPT의 도움을 상당히 많이 받았던 것이 떠오른다. 물론 원하는 결과를 구체적으로 얻기 위해선 그만큼 정교하게 질문해야 하지만, 핵심 내용이 질문에 충분히 담겨 있으면 아주 빠른 시간에 코드로 기본적인 틀을 잡는 것이다. 그러나 GPT에게 과제를 도와달라고 요청하면 생뚱맞은 결과물을 갖고 올 때도 많았는데, 저자의 설명에 의하면 이는 AI가 코드를 작성하는 데 확률을 사용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 줄의 코드를 작성하는 데 그 작업에 성공할 확률이 높은 코드를 갖고 온다는 이야기이다. 나에게는 AI도 '찍기'가 가능하다는 개념으로 들려 오히려 소름이 돋았다. 가능성 있는 상황에 걸지만 성공을 장담하지 못하는 뻔뻔함은 인간의 전유물인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환각 현상을 감안해도 인공지능 개발자를 사용하는 것의 효율성은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저자의 말대로 견고한 벽에 금이 가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인공지능이 인간 개발자를 대체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데, 코딩의 핵심은 어쨌거나 프로그래밍 자체보다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AI는 시키는 일은 하지만 자신이 문제를 찾아내고 미연에 방지할 능력은 없다. 둘째로 AI의 지적 노동에 대한 책임이 명확하게 선언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AI를 사용하는 사람은 지적 노동 그 자체를 넘어선 더 큰 차원의 문제를 보아야 한다.

 

좋아하는 웹툰에서 'AI가 그릴 수 없는 그림'이라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주인공이 자화상을 그린 것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저자가 짚어낸 AI와 인간의 차이점으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이 자기인식의 영역이었다. 내가 실존한다는 느낌의 근원이 신체에서 비롯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나 저자의 견해가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나는 지금 마시고 있는 커피를 씁쓸하고 깔끔하다고 느끼고 냉장고에 넣어둔 생수의 차가움, 커피의 끝부분에 남는 쌉쌀함까지 모두 알고 있다. 끝에 은은하게 감도는 커피향, 갈색과 검은색의 경계에 놓인 그 투명하지만 애매한 색을 눈으로 보고 있다. 다만 모든 사람이 나와 똑같은 취향을 갖고 있지는 않다. 쓴맛을 싫어하는 내 동생은 커피를 입에 대지도 않고, 샷 두 번 넣은 커피가 진하다고 싫어하시는 아빠는 늘 연한 아메리카노를 마신다. 그렇다면 AI는 어떨까. 학습한 데이터의 종류와 양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커피가 쓰다는 것'을 이해는 하겠지만 쓴맛이 어떤 맛이고 그 기준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을 것이다. 맛을 인식할 혀와 세포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인공지능과 다른 인간 지능의 핵심은 이곳에서 나온다. 그것은 잘 학습된 날카로운 지식의 양이 아니라 원초적인 감각으로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감각으로 느껴지는 공명. 공감으로 인한 감수성은 AI에게서 나올 수 없는 인간의 지능이다. 모든 인간의 연대와 공감, 집단지성은 이 자기인식에서 나온다. 물론 인간과 흡사한 신체를 가진 AI 로봇이 나올지 모르는 일이지만 인공지능이 자신의 감각을 주어진 것으로 느끼지 않고 자연스럽게 그것을 체감하기에는 어려울 것이다. 자극을 넘어 애틋하고 충동적인 감정을 느끼고 그것을 완연히 받아들이는 성장의 과정은 그들에게 존재하기 어려울 것이다. 자연히 인간에게 주어지는 것과 달리 AI에게 사랑과 권태, 고통과 같은 감정과 그 근원이 생기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결국 인공지능은 그림자일 뿐이다. 인간을 밑그림으로 작품을 만들 수는 있으나 그 자체가 제로베이스에서 뭔가를 그려낼 순 없다. 그러나 인공지능이 인간의 통제 밖으로 나갈 것이라는 것도 맞는 말이다. 언젠가는 인간의 지시 없이도 다른 인공지능이나 자신을 복제할 수 있고, 그것이 인간을 크게 무너뜨릴 수도 있다. 어떠한 경우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중요한 것은 인간이다. 인공지능의 사용 여부를 떠나 인공지능이 허무는 벽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하려는 노력과 시도가 사회 인프라로 구축되어야 하고, 인간이 인공지능을 대하는 태도 역시 이것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인간이 인공지능과의 팽팽한 관계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선 결국 지피지기의 자세로 인공지능을 아는 것이 첫째, 다른 인간과 사회를 이해하는 것이 두 번째다. 0순위로 해야 할 것은 지금 나 자신이 실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신체와 정신으로 받아들이고 치열하게 자각하는 것이다. 경계를 만드는 것은 결국 관계이기 때문이다. 관계가 없으면 고독은 존재할 수 없으며 고독은 자립의 근간이 된다. 자립이 없다면 실존으로는 이어질 수 없으니 관계의 사슬을 자각하는 것이 첫 단계이다.

결국 상생을 위한 관계는 인간의 사유와 고찰 없이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기술의 발전과 인류의 안정 사이의 키는 인공지능을 만들고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달려 있다는 뜻이다. 결국 <AI 트루스>에서 조명하는 바는 인공지능과의 경쟁보다는 주도권을 쥘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 더 가치 있다는 것이다. 서로가 서로 없이는 존재할 수 없으므로 인간과 인공지능은 경쟁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 흥미로워 저자의 예측과 견해를 보고 싶으나 책은 열린 결말로 끝을 맺는다. 이 이도 저도 아닌 상태가 현재 우리가 발을 내딛고 있는 살얼음판이다. 현대 시대 인간이 기술에 가져야 할 의무는 무엇인지 고민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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