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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미디어

컬럼/인터뷰

『vi 시작하기』 그 뒤에 숨겨진 비밀

번역을 할까 말까? vi 시작하기작년 이때쯤, vi 번역에 관한 말이 우리(SELLI, 서울시립대학교 리눅스 사용자모임) 사이에 나돌았다. 당연히 우리는 하겠다고 말했고(아르바이트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샘플 번역도 별 문제없이 통과됐다. ‘훗! 번역이란거 별거 아니군’. 솔직히 역자들, 아니 대부분의 대학생들이 고등학교 3학년 때가 가장 영어 실력이 뛰어나고 그 뒤로 시간이 흐를수록 쇠퇴하지 않던가? (뭐 그렇지 않은 착실한 대학생들도 있겠지만, ^^) 그런 우리의 샘플 원고가 OK되다니! 이때부터 우리들은 자만에 빠졌다. 그리고 여름 방학을 이용해서 무려 10명이 넘는 인원이 각자 한 단원씩 맡아 번역하기 시작했다. 결국 그것이 고난의 길의 시작이었음을 모르고 마냥 좋아했었던 때가 생각난다. 번역, 별거 아니군! 처음 책을 번역할 때 인원이 10여 명이었다(정확한 인원수를 기억조차 못하는 것으로 보아, 사람이 무지 많았던 것이 확실하다). 우리의 정확한(?) 계산에 의하면 <300 / 10 = 30>, 즉 1인당 30페이지씩만 번역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30페이지! 그래 넉넉하게 잡고 일주일이면 가뿐하게 끝나겠지’라고 생각했던 것이 큰 오산이었다. 역자 소환 그 많은 역자들이 책을 가뿐(?)하게 번역해서 한빛미디어에 넘기고, vi 책을 번역했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고 겨울 방학을 한껏 즐기고 있었을 무렵, 한빛미디어 내부에서는 담당 편집자가 정해졌고 본격적으로 편집 작업이 시작되었다. 문제는 이때부터 드러나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면, 10여 명이 한 책을 번역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였다. 10여 명 각자의 개성이 뚜렷이 드러나는 문체와 통일되지 않은 용어, 그리고 번역하다가 귀찮았는지 가끔씩 빼먹은 몇 줄, 오역하기 등등, 정말이지 문제점 투성이였던 초기 원고를 생각하면 편집자가 열받을만도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급기야 역자 몇 명이 취조실(우리끼리는 이렇게 부른다. 한빛미디어 사무실의 조그만 회의실인데 당시 역자들에겐 틀림없는 취조실로 느껴졌다. 영화 ‘투캅스3’ 같은데 나오는 범인을 다루는 장소 말이다)로 소환 당했다. 그때가 1월 중순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몹시 추운 날씨에 취조실을 찾아야 하는데, 한번 가본 적이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하던 사람(역자 김정석)이 같이 헤매버리는 것이 아닌가! 10여 분 헤매다 결국 취조관(한빛미디어 리눅스팀 팀장)에게 전화를 걸어 간신히 찾아갔다. 그때 처음 본 취조실은 생각보다는 밝았다. 그리고 우린 취조관을 만날 수 있었다. 가볍게 인사를 하고서 처음 나온 말은 다름 아닌 “이거 큰일났습니다.” 바로 가슴을 찌르는 우리 취조관의 무서운 한 마디였다. 켁! 이건 뭔 소리? 우린 그저 “이제 약간만 손보면 되겠네요.”라는 내용의 말을 들을 줄 알고 의기양양하게 찾아갔는데 큰일은 왠 큰일? 그 말이 끝나자마자 우리 앞에 주어진 것은 각 장에서 누락된 부분을 색색가지 포스트잇으로 붙여놓은 화려한 원서와 딸기밭(잘못된 부분을 빨간 펜으로 교정한 원고를 이르는 말)이 된 우리의 원고, 그리고 편집자가 원고를 보고 느낀 점을 아주 간단명료하게 적은 가슴을 콕콕 찌르는 듯한 글, 그 중에서 아직도 선명하게 눈앞에 아른거리는 단어, ‘교 열 불 가’라는 말. 으아악~ 우린 완전히 새됐다! 역자들 학교에 둥지 틀다(?) 오! 최악의 번역 상태. 번역을 차라리 안했다고 말하고 싶었다. 누락부분은 왜 이리 많은지. 책 번역을 학교 리포트쯤으로 생각했기 때문인가? 여하튼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갔다. 작업 재시작!!! SELLI의 최정예 멤버를 다시 구성했다. 여기서 최정예란 안 씻고, 안 먹고, 안 자고, 삽질에 정통한, 즉 일반적으로 폐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을 말하며, 그들이 바로 『vi 시작하기』의 최종 역자가 된 것이다. 서울시립대학교 전자계산소에서 비공식적으로 방을 빌려준 덕택에 그곳에 모여 번역을 시작했다. 여기서 잠시 지난 겨울을 생각해보자. 한강이 꽁꽁 얼어붙을 만큼 춥던 그 겨울, 난방이라곤 오전 9시에서 11시까지 틀어주는 히터가 끝이었다. 우리는 24시간 철야작업을 해야만 했는데 첫날은 손가락에 감각이 없을 지경으로 온 몸이 꽁꽁 얼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굴하지 않았다. 2월초까지 모든 번역을 끝내야만 했으므로 어찌 추위가 문제가 될 수 있으리오! 게다가 우리에겐 그 언젠가 오영은(번역한 문서를 정리한 vi 역자 중 한명)씨가 구입해둔 전기 히터가 있지 않던가? 사실 그 히터는 전산통계학과 학부생 연구실(일명 X실)에서 풀가동 중이었으나 아무도 없는 틈, 아니 힘없는 자들만 있는 틈을 타서 히터를 뺐어왔다. 쾌적해진 환경을 만들고 좋아한 것도 잠시, 그로 인해 우리는 모두 집에 들어가는 시간보다 학교에 있는 시간이 더 많은, 춥고 긴 겨울을 보냈다. And These Are My Brothers, Darrell, Darrell, and Darrell 우리는 각자의 개성을 죽이고 통일된 번역을 하기 위해 작업을 단계별로 나누었다. 1차 번역 ⇒ 2차 번역(누락검토) ⇒ 한국말로 변환하기 ⇒ 영어 원문의 의미 살리기 ⇒ 예제 점검하기 ⇒ 최종 수정 각자의 영어실력이 여기서 확연하게 드러나 버렸다. (-_-); 서로 아주 정겹게 책임을 떠넘기고 주먹질(?) 해가며 번역하던 우리에게 닥친 가장 큰 시련 중 하나는 알 수 없는 원본의 은유적인 표현들이었다. 그 중 가장 멋진 문장은 “And These Are My Brothers, Darrell, Darrell, and Darrell.” 결국 이것을 우린 “vi 클론들의 공통 특성”이라고 해야 했다(『vi 시작하기』 8장에서 발생한 이야기다). 누구를 탓할까마는 『vi 시작하기』의 원저자인 린다 램과 아놀드 로빈스가 미운건 사실이었다. 편집자의 독촉과 고문 거의 하루에 한 단원씩 끝내서 원고를 보내야만 했다. 원고가 늦어지는 날엔 어김없이 전화기 저편에서 편집자의 부드러운(과연 부드러웠을까?)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간 일정이 미루어 졌기에 설 연휴기간에도 작업을 했어야 하지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결국 5일이나 작업이 다시 늦춰지게 되었고 그에 대한 고문(?)도 잇따랐다. 그때까지 편집자를 만난 적이 없기에 편집자가 나이 지긋하신 아주머니(전화상 들리는 목소리가 아주머니 같았다.)인줄 알고 있었기에 한마디, 한마디 하시는 말씀을 그냥 가볍게 넘길 수가 없었다(그러나 알고 보니 편집자도 우리 또래였다. 지레 짐작하고 알아서 긴게(?) 억울했다. ㅠ.ㅠ). 전화가 올 때마다 충성을 맹세했고, 마지막 부록을 넘기면서 1차 작업을 완료했다. 그렇다고 편집자의 고문(?)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 고문의 시작을 미처 깨닫지 못 하고 행복감을 느끼고 있을 바로 그 무렵.... 역자 잠적 2001년 1월을 모두 반납하고 2월에는 ‘나름대로 완성된 번역문’을 모두 전송했다. 그리고는 역자들 모두 놀러가 버렸다. 누구는 스키장으로, 누구는 고향으로, 누구는 집으로… 모두 이렇게 사라져버렸다. 우리는 역자들의 대표로 이기원씨를 지정해두었는데 그는 스키장에서 아예 둥지를 틀어버린 듯 했다. 역자들 모두 ‘이젠 끝났군’ 하며 한숨 돌리고 있었고 결국 한빛미디어와 역자들 간의 연락은 두절되었다. 번역본을 다 보낸 후 다른 일에 눈독을 들이고 있을 때, 문득 날아온 편지 한 통. 그 편지에는 무시무시한 파일이 첨부되어 있었다. 이제 교정이 시작된 것을 알리는 내용에 무려 다섯 단원이 포함된 파일이 첨부되어 있던 것이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질문 메일이 쇄도했다. 그런 것도 모르고 스키장에 둥지를 튼 역자 대표의 잠적 아닌 잠적으로 SELLI는 어마어마한 오해를 사게 되었다. ‘모두 도망갔다’는 소문이 온 동네에 퍼진 것이다. 사실 갈 곳도 없는 불쌍한(?) 사람들인데 말이다. 누가 번역 시작하자고 했냐?! 초벌, 재벌 번역까지 끝냈으니 이제 할 일은 교정과 편집! 어찌된 것이 교정을 할 때마다 오탈자나 잘못 기술한 사항들이 점점 늘어만 가는지, 서로 예쁘게 교정된 우리의 번역본을 보며 울며 말했다. “누가 번역 시작하자고 했냐?!” 틀린 부분이 나올 때마다 역자들의 핸드폰이 울렸다(통신수단이 이메일에서 바로바로 답변이 가능한 전화로 바뀌었던 것이다). 편집자와 통화하고 설명하고 직접 실행해보고 교정하고… 그러기를 하루에도 수십 번. ‘아~~ 번역이 이렇게 힘든 일이란 걸 미처 몰랐구나’하는 생각이 언제나 머릿속에 맴돌았다. 결코 쉽지 않았던 번역, 그리고 애매한 문체에 걸맞게 애매하게(?) 번역한 부분에 대해서는 여지없이, 이해를 요하는 편집자의 메일이 왔다. ‘꼼꼼히 편집한 만큼 좋은 책이 될 수 있으리라’라는 생각으로 위안을 삼을 수밖에 없었다. 어떤 책이든 이렇게 많이 신경을 쓰고, 섬세한 번역 작업을 한다면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되는 날은 그리 멀지 않을 것이다! 우린 중간고사에요! 번역이라는 일은 학생이 단순히 자원 봉사식 또는 단기 아르바이트 정도로 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와 계약을 맺고 하는 작업이라서 책임감이 뒤따라야 했다(모든 일에 책임감이 뒤따라야 하지만, 평상시 우리가 하던 일보다 더 막중한 책임감을 뜻한다). 책 출간이 늦어져서 일은 더 급해졌다. 중간고사와 번역이 겹쳤다. “우린 중간고사에요!”라는 말은 전혀 효력이 없었다. 역시 사회와 학교의 차이점을 확실히 느낀 일이었다. 이 때 만큼 편집자가 미운 적이 없었다. 결국 대표 이기원씨가 다시 취조실로 소환당하고 같이 저녁(주로 피자였음) 먹고 같이 퇴근하는 일을 몇 번이고 반복하게 되었다. 편집자와 마주치다 이기원씨를 빼고는 담당 편집자와 전화로만 이야기를 했었기 때문에 실제로 만난 적은 없었다. 우리들은 사실 전화로만 이야기하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만나면 맞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4월 8일 피할 수 없는 역사적인 만남이 이루어졌다. 제 5회 공동체 세미나에서 후원 업체로 한빛미디어가 참여했고 LUG인 SELLI는 SOLUX(숙명여자대학교 리눅스 사용자 모임)와 같이 과일 판매 이벤트를 하고 있었다. 그토록 당당하자고 다짐했건만 담당 편집자 앞에서는 어느새 “과일 맛있어요 드셔 보세요” 하고 무료로 한 접시씩 돌리고, “힘드시죠?” 하며 한빛미디어 부스 설치를 도와주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했다. 흑~ 우리의 약한 모습...~~ 靑出於藍靑於藍 - vi 시작하기 국내 최초의 vi 교본을 번역하는 역자들로서 책임감은 실로 막중했다. 번역서들 중 번역이 엉망인 책은 차라리 원서를 보는 편이 나은 것도 많다. 그러나 우리는 감히(!) 원서보다 번역서가 백만배 천만배 났다고 주장한다(-_-/~). 교열에 교열, 그리고 점검에 점검. 이러한 것들이 “vi 시작하기”를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vi 시작하기, 드디어 빛을 보다! 2000년 5월에 번역을 시작해서 20세기에 마무리 짓지 못한 일을 2001년 1월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여 21세기에 완성했다. 세기를 넘나드는 작업 끝에 역자들은 대부분 윈도우에서도 vi를 사용한다. 사실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는지 우리도 모르겠다. 쓰다 보니 편했고 ‘이런 기능이 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고 찾아보면 그 기능이 꼭 있는 편집기이기 때문에 사용한다. 이런 편집기에 대한 우리나라말로 된 멋진 책이 있다면 더없이 좋은 일이 아닐까? 이제 남은 판단은 독자들에게 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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