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빛출판네트워크

2010년 12월 14일, 밀린 출간을 마무리하느라 한참 분주하던 그날  『Windows 시스템 실행 파일의 구조와 원리』의 절판 확정 메일이 왔다. 사실 그전부터 몇 차례 절판 의견이 영업부로부터 있었던 터다. 그때마다 기획부에서는 “이 정도로 윈도우 실행 파일 구조를 깊게 다루는 책이 없다”는 이유를 들어 강력하게 중쇄 의견을 냈다. 하지만 그해 겨울에는 절판 의견을 막을 수가 없었다. 이미 윈도우 서적의 시장은 모바일과 웹에 변방 중의 변방으로 온전히 밀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2009년 7월 출시된 윈도우 7의 대중화로 이제 PC는 64비트 시대로 안착해 살아있는 정보로써 의미가 없었다. 아쉽지만 34비트 기반의 이 책에 이젠 정말 안녕을 고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2009년 11월 22일부터 KT가 아이폰 예약 가입을 진행했다. 그로부터 적어도 5년은 스마트폰이 사회 전 분야를 강타했다. IT 기술 관련 출판 시장도 그런 흐름을 피할 수 없었다. iOS와 안드로이드 개발 러시가 정말 오래 지속됐다. 당연히 관련 입문서는 불이 나게 팔렸다. 그렇게 안타까운 마음으로 『Windows 시스템 실행 파일의 구조와 원리』를 절판했건만… 사람의 마음은 참 무심한 것이다. 가끔 날아오는 재출간 의견과 전자책 발행 요청에도 잊고 잊고 잊고 살았다.

2014년 10월 29일, 메일 한 통이 왔다. 『Windows 시스템 실행 파일의 구조와 원리』의 이호동 저자였다. 윈도우 동기/비동기 기술 관련 서적을 출간 제의해주셨다. 앞서 언급했지만 윈도우는 온전히 변방의 기술이다. 그런 상황에서 이 책을 출간해야 하는지에 시장성 측면에서 나 자신도 저자도 그리고 한빛미디어 이해관계자들도 모두 회의적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우리가 아니면 윈도우 개발자에게 꼭 필요한 이 책을 낼 만한 재정적인 여건을 갖춘 출판사는 없습니다”라는 주장은 나름대로 설득력 있었다. 사실 그런 주장과 결정은 그리 낯선 나만의 것은 아니었다. 동기/비동기 기술을 다룬 당시 원고는 『IT EXPERT 윈도우 시스템 프로그램을 구현하는 기술』이라는 이름으로 2015년 4월 1일에 세상의 빛을 보았다.

시간을 다시 거슬러 올라가 2014년 11월 3일, 이호동 저자와 첫 만남이 있던 그날, 나는 『Windows 시스템 실행 파일의 구조와 원리』의 개정판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 들었다. 이호동 저자는 ‘그것이 엄청난 마음의 숙제’라고 화답해주었다.

이번에 출간한 『IT EXPERT 리버스 엔지니어링』이 『Windows 시스템 실행 파일의 구조와 원리』의 개정판이라는 연장선에 있기는 하지만, 실행 파일 구조만 다루던 기존 내용과는 달리 리버스 엔지니어링 전반으로 그 주제가 확장되었다. 그래서 같은 제목을 사용하는 대신 ‘리버스 엔지니어링’으로 바꾸게 되었다. 확장하게 된 계기는 ‘지은이의 말’에 다음과 같이 잘 나타나 있다.

“이미 64비트 시대가 성큼 다가왔다. 개정판을 준비하면서 더는 32비트 기반은 의미가 없기에 64비트를 기반으로 전면 개정할 계획을 세웠다. 그렇게 64비트 PE에 파고들자 단순히 PE 파일로만 국한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64비트 PE를 제대로 알려면 근본 원리와 64비트 기반 윈도우 시스템 내용이 함께 다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PE 자체가 아니라 PE를 기반으로 더 확장된 ‘리버스 엔지니어링’까지 포함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알다시피 리버스 엔지니어링 원리와 툴 사용법을 다루는 책은 이미 시중에 많으므로 전혀 다른 형식의 리버스 엔지니어링, PE 기반에서 출발하는 리버스 엔지니어링이 필요했다.”

실행 파일 구조를 파고드는 1권과 디버거 제작까지 이어지는 2권의 분량을 합치니 무려 2,244쪽이다. 깊은 통찰력과 끊임없이 파고드는 개발자 본연의 집념… 어떤 말로도 다 형용할 수 없을 것 같은 엄청난 양이다.

개정판이 출간되기 전까지 구판은 한 온라인 서점에서 호가가 15만 원에 달했다. 『IT EXPERT 리버스 엔지니어링』 1권이 지난해 10월, 그리고 2권이 올해 2월 출간되었다. 이젠 그 어마무시한 중고가는 잊어도 된다. 적어도 이 책이 정식으로 판매되고 있는 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