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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커와 트래커: CP4E

한빛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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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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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BIT

9,408

저자: 스티브 피긴스, 역 전순재
해커와 트래커는 자신들이 처한 환경에 대해 고도로 조율된 감각을 공유한다. 뿐만 아니라 그 환경에 쉽게 대처하고 조작하는 능력까지도 공유한다. 그러나 원초적인 트래커의 기술을 함께 공유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는 것처럼, 대다수의 사람들은 온라인 환경을 통제하는 해커의 능력이 없다. 본 기사에서는 오라일리 네트워크의 편집자 스티브 피긴스(Stephen Figgins)가 그 둘 사이의 유사성을 알아보고 프로그래밍 지식을 증진시키기 위한 노력에 대해 논의 할 것이다.
살다 보면 어떤 때는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관심사가 서로 겹치는 경우가 있다. 최근 나에게는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모든 사람에게 가르치자(CP4E)는 귀도 반 로섬(Guido van Rossum)의 제안서를 읽다가 이러한 일이 일어났다. 그 때 나는 원시부족을 연구하고 있는 존 영(Jon Young)의 통찰에 관심을 두고 있었는데, 그는 원시부족이 아이들에게 자신들을 둘러 싸고 있는 환경과 관련된 광대한 지식을 어떻게 가르치는지를 연구하고 있다. 존 영은 워싱턴주 뒤발(Duvall)에 있는 Wilderness Awareness School을 창립한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는 『The Tracker』 저자인 톰 브라운 주니어(Tom Brown, Jr.)의 수제자 였다.

여기에서 존 영이 특히 관심을 두는 연구분야는 원시부족 문명이 트래킹을 가르치는 방법과 관련된 것이다. 트래킹은 모든 감각이 동원되는 대단히 복잡한 기술로 자연인의 본질적 표현이다. 다시 말해 예리한 정신력, 기술, 집중력이 한데 모인 절대절명의 기술이다. 트래킹 기술을 배우는 것은 극도로 어려우며, 많은 시간을 들판에서 보내야(† 역자 주: dirt time, 사냥법을 배우기 위해 흙먼지 속에서 뒹굴면서 보내는 시간) 얻을 수 있는 기술이다.

어떤 문화는 다른 문화보다 더 성공적으로 자신들의 후손을 가르친다. 존 영은 그 이유를 알고 싶었다. 그리고 그러한 교수법을 습득하여 자신이 세운 학교에 적용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학창 시절부터 자신의 연구 주제를 이것으로 초점을 맞추고 지금까지도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존 영은 모든 사람들에게 기본적인 환경학을 가르치고 싶어한다. 그는 미래의 트래커들을 찾아 나서려하고 있다.

해킹 역시 대단히 복잡한 기술이다. 여기서 해커(hacker)라는 용어는 컴퓨터 범죄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해두자. 나는 그 용어를 은어 파일(The Jargon File) 또는 신 해커 사전(New Hacker"s Dictionary)에서 사용하는 용어와 똑같은 의미로 사용하겠다. 이런 의미에서 해커(Hackers)란 그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컴퓨팅을 열광적으로 탐험하는 프로그래밍 아티스트이다. 그리고 해킹(Hacking)이란 해커라는 프로그래머의 본질적 표현으로 날카로운 정신력, 손재주, 그리고 집중력이 관련된 기술이다.

대부분 해커는 해커가 되도록 훈련을 받지는 않는다. 대부분의 해커들이 그냥 컴퓨터에 열정적으로 빠져 있으며 시간이 흐르면 다른 해커로부터 인정을 받는게 고작이다. 학교에서는 컴퓨팅을 기술이 아니라 과학으로 가르쳐 왔다. 따라서 반 로섬은 모든 사람들을 위해 기본적인 프로그래밍을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미래의 해커들을 찾아 원정중이다.

반 로섬의 CP4E

1999년 6월, 반 로섬은 CNRI(Corporation for National Research Initiatives)에 제안서를 제출하였는데 그 제안은 아래와 같이 세 부분으로 이루어진다.
  1. 고등학교와 대학의 교과과정(curriculum)을 개발
  2. 프로그램 개발을 위해 더 좋은 도구 제작
  3. 이 도구들을 중심으로 사용자 공동체를 구축
파이썬 프로그래밍 언어의 저자인 반 로섬이 이 언어를 중심으로 기본적인 도구들을 바닥에 깔기로 결정한 것은 놀랄만한 일도 아니다.

CP4E가 처음으로 슬래시닷(Slashdot)에 발표되었을 때, 격렬하게 논의된 주제는 파이썬 언어가 프로그래밍 교습에 어떻게 적절한가였다. 그러나 실제로 이 주제는 옹호 메시지에 파묻혀 버려 소수의 메시지만이 그 제안을 다루었을 뿐이다. 그 중의 한 메시지는 다음과 같았다. "모두라고? 진짜 모두를 가르칠 생각인가? 왜 그래야 하지?" 어떤 사람들은 그 제안을 모든 사람을 자동차 정비공으로 만들려는 시도에 비유했다. 자동차를 몰기 위해 자동차 수리법까지 알 필요는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러한 생각에는 관심을 두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아이들이 배우고 싶어하지 않을 것을 굳이 가르치려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불투명한 패러다임(paradigms)

반 로섬은 CP4E를 자동차가 아니라 문자교육(literacy)에 비유했다. 문자교육의 목표는 모든 사람들을 전문 작가로 만들고자 한 것이 아니었지만 그 덕분에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글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으며 간단한 문서들을 스스로 만들 수도 있게 된 것이다. 물론 소설을 만들어 낼 수 없을 수도 있고 심지어 짧은 이야기조차 짓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기본적인 문자지식만 있으면 자신의 생각을 남들과 교환할 수 있다. 문자교육(literacy)은 르네상스를 가능하도록 도왔다. 문자교육은 중세 시대의 사람들의 세계관을 변화시켰을 정도이며 르네상스가 도래할 것을 예측할 수 없을 정도였다. 다시 말해 중세인들은 미래를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
문자교육의 목표는 모든 사람을 전문적인 작가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작품을 이해하고 자신만의 생각을 담은 글을 쓸 수 있게 하는데 있다.


보편적인 프로그래밍 소양(literacy)의 결과가 어떨지는 아직 모른다. 그렇지만 반 로섬은 과거 보편적인 문자교육이 큰 변화를 가져왔던 것처럼 CP4E가 보편화되면 엄청난 변화의 바람을 몰고 올 것이라 믿고있다. 책상마다 컴퓨터가 한 대씩 놓여 있으니 모든 사람들에게 간단한 프로그램을 작성하는 법과 관련된 지식정도는 가르칠 수 있지 않은가? CP4E는 현재 우리가 컴퓨터에 대하여 생각하는 방식과 사용하는 방식을 변화시킬 가능성이 아주 높다. 반 로섬이 자신의 제안서에서 제시한 바에 의하면 프로그램은 개인적인 요구도 만족시킬 수 있게 더욱 유연하고 쉽게 맞춤화가 가능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중세 시대 사람들처럼 우리도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해 무지하다.

실제로 이것은 자유에 관한 것이다. 보편적 문자지식(general literacy)의 발흥이 르네상스 시대에 사고의 해방을 가져 왔듯이 프로그래밍 소양의 발흥 덕분에 어쩌면 우리는 컴퓨터가 어디에나 존재하는 이 세계를 자유롭게 탐험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컴퓨터가 일상생활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수 많은 도구들에 내장되기 때문이다. 정보화 시대의 소양(Literacy)은 컴퓨팅 소양(literacy)이 될 것이며 프로그래밍을 할 줄 아는 것이 될 것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CP4E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 제안서의 하부제목 속에는 더 직접적인 가능성이 숨어 있다. 이 계획은 단순히 보편적 프로그래밍 소양(programming literacy)만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내일의 프로그래머를 찾기 위한 원정"이다. 그러나 생각컨데 내일의 프로그래머가 아니라, 내일의 해커를 찾고자 하는 것일게다. 예술적 기술에 대한 이러한 종류의 보편적 지식에 가장 근접한 예는 내가 생각하기에 원시부족의 환경학적 지식과 트래킹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원시부족의 환경학적 소양

환경에 대한 지식에 따라 생존이 결정되기 때문에 원시부족은 주변 동식물에 대해, 그들의 상호 관계에 대해, 그리고 어떻게 그들로부터 배울 수 있는지에 대해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가르쳐야만 하는 강렬한 동기가 있다. 이러한 일들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부족만이 생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어떤 부족의 어린이들이 배운 생태 교육은 놀랍기 이를데 없다. 위닌 페라이라(Winin Pereira)와 제리미 시브룩(Jeremy Seabrook)은 Asking the Earth (Earthscan Publications, 1990)에서 인도의 왈리(Warli) 부족의 12 살짜리 소녀를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라지(Raji)는 광범위할 뿐만 아니라 완벽한 지식 시스템을 갖고 있다. 그 아이의 지식 시스템을 정식으로 분류하면 축산, 농력, 가축, 기상학, 약초학, 식물한, 동물학, 건축학, 환경학, 지질학, 경제학, 종교, 심리학 등등에 걸쳐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다. 그리고 여기에서 더욱 중요한 것은 그녀가 놀랍도록 성공적인 교육 시스템의 일부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기 때문에 그 아이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지식을 크리슈나(Krishna)와 어린 동생들에게 가르쳤다. 이런 시스템에서는 낙제나 낙오가 없다. 교육받은 사람은 그들에게 직업을 주는 다국적 회사에 의존할 필요없이 만족스럽게 살아간다. 게다가, 이 아이가 특별히 뛰어난 것도 아니다. 왈리 부족의 또래 아이들처럼 이 아이도 비슷한 수준의 지식을 갖고 있다.

원시부족은 자연에 묻혀 자연과 함께 산다. 그들의 지각능력은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한도까지만 미친다. 그들이 자연스럽게 환경에 대처하는 방식은 이제 현대 문명에서는 거의 사라져 버렸다. 이와 같이 자연을 인식하는 능력은 현대화된 문명 사회에서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과거라는 시간적인 장벽보다는 자연이라는 세계로부터 더욱 고립되어 살아간다. 호랑이가 다가오는 것을 알지 못해도 호랑이에게 잡아 먹히지는 않는다. 사슴을 쫓을 능력이 없어도 배를 곯지는 않는다. 황야에서 길을 잃는 경우는 더군다나 거의 없다. 문명의 역사에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어느 시점에서 (아마도 수 천년 전에) 인간은 이런 수준의 자연적인 지각능력을 상실했을 것이다.

프로그래머의 환경학

자연 환경을 이해하는데 할애되었던 우리 뇌의 영역은 대부분 작동을 멈추었다. 이와 같은 인지능력은 정치적 환경에서 살아남기 (the art of politics, 정치학적 기술), 전쟁터에서 살아남기(martial arts, 전쟁 기술)를 비롯하여 다른 일에도 적용된다. 그러나 이 인지능력은 사람들의 보편적 소양이 되지 않았다. 거기에는 생존이라는 절대절명의 필요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래 동안 사용되지 않았던 뇌의 일부분이 다시 살아 나고 있다. 해커의 기술에서 다시 도래하고 있는 것은 다름아닌 바로 트래커의 기술이다.
인터넷의 등장과 함께, 새로운 광야가 떠 오르고 있다. 그 광야에서는 엄청나게 많은 장치들을 이용한 수 많은 통신들 사이의 상호작용으로 새로운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다. 상호작용은 삶이라는 거미줄이 복잡한 것처럼 웹에서 거미줄처럼 서로 엮이고 있는 중이다. 개인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성공이라는 것은 이제 그런 환경을 이해하고 조작할 줄 아는 능력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모든이를 위한 컴퓨터 프로그래밍의 필요성에 대해 의문을 가진 사람들은 아직도 여전히 컴퓨터를 외부 현실에 연결된 것이 아니라 책상 위에 놓인 상자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네트워크는 현실(reality)이다. 네트워크에서의 Y2K 문제를 비롯해 갑자기 모든 컴퓨터가 멈추면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 것인가? 여기서 말하는 네트워크란 바로 컴퓨터이다. 그리고 우리의 후손들의 성공여부는 부분적으로는 그 네트워크 환경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상호작용 할 수 있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이 외에 성공여부는 프로그래밍 소양(literacy)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과연 우리의 후손은 컴퓨팅이라는 광야, 인터넷이라는 미 정복지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것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인가?

해커는 트래커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정복지, 개척지, 마을, 도시, 이 모든 것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서도, 해커와 트래커는 사물이 움직이는 원리를 이해한다. 그들은 환경을 읽는 법, 조작하는 법, 이런 지각 능력을 최대한으로 확장하는 법을 알고 있기 때문에, 어떤 환경에 처하든 적응할 수 있고 이용할 수 있다. 그들을 전율하게 만들고, 그들의 작업에 열중하게 이끄는 것은 바로 미지의 세계, 아직 답사하지 못한 미래의 세계이다. 그들은 무수히 펼쳐진 가능성을 파헤쳐서 상상을 현실로 만든다.

우리의 뇌에서 오랫 동안 사용되지 않았던 부분이 다시 살아 나고 있다. 해커의 기술에서 다시 도래하고 있는 것은 다름아닌 바로 트래커의 기술이다. 네트워크라는 풍부한 생활환경에서 우리는 한번 더 이런 기술들을 적용하게 되었다. 그리고 프로그래밍을 어쩔 수 없이 배워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새로 도래할 생활환경을 가장 잘 다루는 자만이 가장 성공적으로 생존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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